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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아기랑 함께

아이가 커가며 달라지는 체코생활

결혼을하고 자녀가 생기고 나면, 부부 생활이 상당히 달라지게 됩니다. 많은 부분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딸이 태어나고 나서, 한동안은 정말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는 나날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의 24개월이 지나고 회사로 복귀하면서, 육아와 회사가 서로 집중도를 저울질하며. 거의 저글링하는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둘다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드는 날도 있었고요.

딸이 만5세가 넘어가니 요새 살~짝 여유로움이 생겨나며, 회사 일도 안정이 되어가고. 어린이집-집을 오가는 일상을 벗어나, 프라하에서 아이랑 놀만한 곳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야외활동의 중요성을 깨닫기도 해서, 지금 프라하 날씨의 황금기라고 할수 있는 6~8월에 신나게 야외를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야외 놀이터(식당이 옆에 있으면 더 좋고요)

강변 물놀이에 관심이 있어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하나 둘씩 가보며, 프라하생활의 활력을 불어 넣는 중입니다.(혹시나 겨울에 또 락다운 할까봐요 ㅠㅡㅠ)

남편 - 부인, 이번 주말에 어디갈까?
나 - 나 가보고 싶은 놀이터가 있는데, 거기 가볼까?
남편 - 그럼 브런치 먹고 가는걸로?
나 - 응응!

남편은 되도록이면 제가 가보고 싶은 곳을 함께 가려고 합니다. 제가 정보 찾는 것도 좋아하고 새로운 곳에 가보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요.

체코남편이랑 살게 되면서 알게 된 점 하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새로운 곳을 가보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
vs.
느즈막히 일어나 늘 가던 곳에서 익숙한 편안함을 추구하는 체코 사람

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정도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더라고요 ^.^

저희 부부의 타협점(?)이라고 하면,
익숙한 곳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브런치를 먹고, 새로운 장소를 탐방하러 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물놀이 놀이터

가 보고 싶었던 놀이터에 도착했는데, 날이 더워서 그랬는지 낮잠을 안 자서 피곤했던지.. 딸이 징징거리면서 계속 웁니다.

그리고는 심지어 신발을 벗고 뜨거운 모래밭에서 뛰어 놀겠다며 우깁니다. 아놔~~

딸 - 엄마, 나 신발 벗으면 안돼? 저기 다른 애들은 다 벗고 있단 말이야.
나 - 지금 한참 더울 때라, 모래가 많이 뜨거울텐데...
딸 - (으아아아아앙) 근데 신발
나 - 노노, 그렇게 울면 놀 수가 없고, 우리가 집에 가야해
딸 - 아니아니. (아아아아앙)
나 - 그럼 어떻게 하고 싶어?
딸 - 집에 안 갈거야.
나 - 놀이터에서 더 놀거야?
딸 - 응! (흐규흐규)
나 - 알겠어. 그럼 뚝
딸 - (아아아아아아앙) 근데 눈물 뚝이 잘 안돼.

이 얘기를 듣고 살짝 웃음이 났습니다.

나 -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딸 - 다른 애들은 다 신발없이 노는데
나 - 흐음.... 그래 벗고 놀아.
근데 다른 애들은 다른 애들이고, 사람이 다르게 생긴 것처럼 다 상황이 다를 수 있어. 알겠어?
딸 - 응

한참을 얘기하는데 몸을 베베 꼽니다.

나 - 화장실 가고 싶어?
딸 - 응응

이때까지도 훌쩍거리며 울었습니다.
(어후~~ 슬슬 인내의 한계가)

여튼 바지에 실례하지 않도록, 아이 손을 잡고 화장실을 내려갔습니다. 변기에 앉아 있는 딸이 저를 부릅니다.

딸 - 엄마!
나 - 응~ (최대한 화내지 않고. 오늘 "엄마"만 한 200번 부른거 같아요 ㅋㅋㅋ)
딸 - 저기 물 나오는데(세면대) 손잡이가 뿔처럼 생겼어~
나 - 어, 그래?
딸 - 저기 봐봐. 진짜 사슴 뿔처럼 생겼어~
나 - 응, 봤어

딸이 생각하는 뿔같은 손잡이

근데 제가 좀 감정없이 대답을 했나봐요.

딸 - 엄마, 기분이 안 좋아?
나 - 아니, 그게 아니라~ 딸이 그렇게 계속 울면, 엄마는 힘들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딸 - 미안해. 엄마
나 - 아니야. 괜찮아. 이제 놀이터 갈까?
딸 - 응응!!

다행히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딸의 울음은 멈췄고, 다시 야외 식당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나 - 지금 한참 더울 때라 발 뜨거울거고, 바닥에 날카로운거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고
남편 - 바닥에 뾰족한거 안 밟도록 해
딸 - 네!

모래밭으로 된 놀이터에서 한 10분 뛰었을까요. 발이 뜨거우니 한 발씩 번갈아가면서 식히고 있습니다.

사실 맨발을 딛는 순간 바로 다시 올 줄 알았거든요.

발을 하나씩 벌갈아가며 식히는 딸의 모습을 보더니 남편이 말합니다.

남편 - 저건 나 닮았네, 미안해~
나 - 뭐가?
남편 - 내가 주장한 게 잘못됐으면 바로 인정하면 되는데ㅡ 계속 내 주장 내세워서 밀고 나가는거
나 - 아하~ 인정하니 다행구만 ㅋㅋ 나라면 그냥 올거 같은데, 우선 발이 뜨겁잖아.

남편 - 인정하기 싫은거지. 근데 부인도 고집있잖아
나 - 당연히 있지~ 어느 정도 고집이 있으니, 아직까지 체코생활도 하고 있는 거거든요~

이런 대화를 나누는중에 딸이 테이블쪽으로 걸어옵니다.

딸 - 엄마~~
나 - 응
딸 - 신발 다시 신으면 안돼?
나 - 신어도 되지. 발이 뜨거워?
딸 - 응

그렇게 신발을 다시 신고, 놀이터에서 한 4시간을 더 놀아ㅡ 야외 식당에서 저녁까지 먹고 돌아온 알찬 주말이었습니다.

한국은 한참 더운 것 같은데 모두 건강하세요!


손잡이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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