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행을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정신이 없습니다.
작년에 아기랑 한국 갔을 때는 비행기 안에서 누워있어서 베시넷을 잘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걸어다니니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지난 번에는 아기가 5개월이었으니 우웃병, 이유식, 기저귀 등 짐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장난감을 가져가야 오랫동안 신나게 놀까 고민이 됩니다.
이제 곧 복직을 준비할 예정이라 최대한 길게 한국에 있고 싶어서, 저와 아기는 먼저 한국에 가고 남편은 휴가를 내서 추석쯤 한국을 오기로 했습니다.
부부들이 설과 추석 명절이면 친정과 시댁 방문하는 일로 많이 다툰다고 하는데요, 저희 언니는 설에는 서울에 있는 시댁을 가고 추석에는 순천에 있는 친정으로 옵니다.
저희 친정에서는 어르신들 제사를 챙기는 대신, 추석에 성묘를 드리고 큰집, 작은집 식구들이 모여 다같이 시제를 드립니다.
저야 해외에 거주하니 매해 참석할 수는 없지만, 이번엔 추석에 때마침 한국을 방문하니 온가족이 시제에 참석하기로 합니다.
언니, 추석에 나는 미리 내려가고, 신랑을 나중에 기차타고 내려가려는데... 언니 코레일 아이디 있지?
네 것도 있지 않아?
어, 근데 너무 오래 되서. i-pin이나 휴대폰으로 개인신분증명을 하라는데, 여기서 할 수가 있어야지
아~ 나도 코레일 쓴지 오래되서 한 번 찾아봐야돼
응, 찾으면 연락 좀 줘
근데 추석표 예약하는 날이 따로 있을걸?
아... 맞다! 추석이지!
추석연휴에는 기차표를 특별판매 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기가막히게 언니와 얘기를 한 날이 추석표 예매 첫날이었고, 다음날인 둘째날 표예약이 가능하겠더라고요
둘째날 한국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예매를 하니, 체코와 한국 시차(써머타임 적용) 7시간 나니.. 저는 전날 밤 11시에 접속을 하면 되는거였죠. 오예!
아기 재우고 있다가 밤에 예약해야지~
하고는 아기 옆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습니다.
남편한테 깨워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눈뜨니 체코 시간 아침 7시네요 ㅠㅠ
추석 연휴가 길다보니 어느정도 티켓이 있겠지 했지만, 아침에 보니 거의 티켓이 없습니다.
후다닥 정신차리고 예약을 하려고 하니 로그인을 했을 때 딱 3분의 시간을 주더라고요. 표를 예매하는 것을 보고 있던 남편이 출근을 하다 발걸음을 멈춥니다.
안절부절 초조해하는 제 모습을 보더니
부인, 혹시 기차없으면 버스 타면 되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
아후~~ 이 체코남자가 추석연휴 고속버스 차가 막히는 것을 경험을 안해봐서 이런 태평한 소리하지,,, 4시간 거리를 한 9~10시간 차를 타고 가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봐야~~~
아하~~~ 이래서 우리 부인이 그렇게 기차표 예배에 사활을 걸었구나 할텐데요.
아무리 추석 휴일이 길다고 해도, 버스 타고 오면 막힐거야. 아흐~ 근대 이게 한번 로그인하면 딱 3분만 주네
헉! 이 화면 위에 타임 보여주는거야?
어, 로그인 시간 3분을 주고 초단위로 시간이 줄어들어
어후
그니까, 더 초조하게
추석 특별 기차표를 예매하면서 갑자기 예전 경험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2006년에 토플시험이 종이로 시험을 치던 PBT 에서 인터넷으로 동시에 보는 iBT로 바뀌면서 난리법썩이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기한 내에 성적이 필요한 사람은 많고 iBT시험 자리는 적게 열리는 상황이었고, 공지된 시간 외에도 갑자기 새벽 1-2시에 자리가 열리기도 했고요.
심지어는 24시간 토플 예약 대기조를 형성해서 야간근무를 서며 시험을 친 사람도 있었답니다.
저는 간혹 자리를 하나 잡기도 했는데요, 잡고나서 아빠, 언니, 제 것 비자카드 마스터 카드를 총 동원해 결제를 하려고 해도 에러가 나서 시스템에서 튕겨 자리를 날려버리고 ㅠ
당시 발급조건 까다로웠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신용카드가 제일 결제가 잘된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토플 시험을 쳐야하는 사람들을 긴장하고 열받게 만들어서 시험 주관 ETS를 개티에스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네요.
이게 거의 10여년 전 있었던 일인데, 추석표를 예매하며 비슷하게 가슴이 조이는 감정을 느끼면서
그렇지, 여전히 한국은 경쟁이 상당히 치열한 나라야
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한국사회 안에 살면서 느꼈던 알수없는 답답함이, 이러한 경쟁체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서가 아니었나.... 게다가 실패를 할 경우 관대롭지 않은면도 있으니까요
서울로 돌아 오는 기차표는 좌석이 없어서 대기로 걸어놓았는데, 대기표는 24시간 내에 결제하지 않으면 취소되더라고요.
다행히 다음날 언니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대기 티켓, 자리 예약되었다고 문자 왔어
응, 언니. 이제 결제할게
내가 뭐 도와줄 것 없어?
아냐아냐. 괜히 언니 번거롭게 해서 미안
남편하고 남편 친구가 순천으로 내려오는 티켓인데...
언니의 도움으로 티켓 결제를 하고, 모바일 기차표를 이용해서 친구 휴대폰으로 보내주려고 했더니, 헉 ㅠㅠ 추석열차표는 전달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어쩔수없이 프린터로 출력을 클릭했는데, 다행히 시스템에 저장해 놓았다가 나중에 출력할 수도 있고 QR코드도 같이 있네요.
추석열차표 끊는게 뭐라고... 한국과 시차때문에 아침부터 부산 떨었더니, 점심 시간 정도 되자 넋이 나갈 것 같습니다.
남편, 티켓 끊었어
(엄지척)
서울에서 출발이 8시 정도 될거야
어? 6시 출발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냐, 8시 출발 11시 도착
응 ㅇㅋ
원래 언니가 시제에 일찍 오도록 5시정도 출발 열차를 예약을 해 놓았는데 제가 취소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날 친척들 모여 인사드릴텐데 아침잠 못잔 투덜거리는 남편을 보살필 여력이 없을테니까요. 게다가 이번에는 남편 친구도 같이 오는데, 둘이서 같이 투덜거리기 시작하면~ 어후...
그냥 돌아가아아아아아아!!
제 성격상 큰 소리 낼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새벽열차가 아니다보니, 시골에서 추석상차림하는데 늦게 생겼습니다.
열차가 11시 도착이라 시제에 늦겠네
우리 둘이서 찾아갈게
불가능할텐데... 어떡하지, 시제를 와야하는데...
못갈수도 있지. 어차피, 체코 살아서 몇년 간 계속 불참했잖아
(화를 한 번 누르고) 아니, 시제가 핵심인데 안볼거면 시골에 왜 와? 그리고 아예 체코에 있는거랑 추석에 한국에 있으면서 불참하는거랑 같아? 아니ㅡ그리고 친구도 한국 제사 풍경 궁금해서 오는거 아냐?
그럼, 우리 둘이 차타고 택시타고 찾아가볼게
(다시 한숨 들이 마시고) 남편, 거기는 도시처럼 설명하면 찾아올 수 있는데가 아냐. 우선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역으로 가야하고, 버스역에 내려서도 또 택시타고 들어와야 해
체코사람이니 한국의 제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적을 수도 있지만, 시제를 가볍게 생각하는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일일히 설명을 해주어야하는 상황에 사알~짝 열도 받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체코생활을 하면서 상당 부분을 남편에게 물어보고 의지하기에, 남편도 외국인 여자랑 체코에 사니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듭니다.
어쩌면 체코에 살아 다행일지도요.
궁금한 것이 많은 체코남편과 한국에 살면, 저한테 꼬치꼬치 캐물어 대답하기 복잡할 수도 있고요.
성인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해서 한가족이 된다는 것이, 꼭 좋은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정 가족과 남편, 남편 친구가 함께할 시간이 어떤 에피소드로 가득할지 설레임 반 걱정 반입니다.
+ 결혼생활이 길어지며 느끼는 점인데 중간 다리 역할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인은 처가와 남편 사이 조절, 남편은 시댁과 부인 사이 조절 ㅜㅜ
자식이 생기면 부인과 자식 사이, 남편과 자식 사이까지 균형을 맞춰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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