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 비행기를 끊고 나서 하루하루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다보니, 드디어 며칠 뒤면 한국을 갑니다. 앗싸 !!! 

유럽에 살며 1년에 1번 한국에 가면 많이 가는 편에 속하는데도, 저는 왜이리 한국행이 애절한지.... 

대한항공 비행기 티켓을 아침에 들여다보고, 저녁에 또 들여다보고 날짜를 다시 확인합니다. 

한국출발 3일 전, 남편은 이제서야 딸과 부인과 떨어져 있는 것이 실감 나나봅니다

아흐ㅡ 부인, 가지마

어딜?

한국

갈건데

부인 가버리면 나만 집에 혼자 있고

간만에 총각같이 좋지, 뭘

아냐, 얼마나 허전할거야

아기 방해없이 밀린 미국드라마도 보고 그래

벌써 다 봤단말이야

아하~~! 그럼 걱정하지마! 남편이 꼭 해야하는 집안일 목록 작성해 놓고 갈게 ㅋㅋ 


치, 우리 그냥 아기만 한국 보낼까? 우리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고

아니지. 아이를 떨어뜨려 놓을거면, 남편이 딸이랑 체코에 있고 나혼자 한국을 가야지

부인 혼자 한국에 간다고?

어, 진정한 자유 부인으로 한국에서 휴가 좀 보내보려고. 음하하하하하하

뭐야 ㅜㅜ 결국 남편이랑은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는거야

어? 음… 가능하면 완~~~~전 나 혼자만의 시간 좀 가져보고 싶은거지, 알면서

부엌에서 남편과 저는 서로를 끌어안고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소파에서 혼자 잘 놀고 있던 딸이 얘기를 다 들었는지

Ne, Ne!!!! (아니, 아니)

하며 후다닥 뛰어와서 아빠 다리를 한껏 끌어 안습니다.

안나, 안나 

너도 같이 안아 하고 싶어?

음!

그리고는 아빠 다리를 더 꼬옥 끌어 안고 얼굴을 파 묻습니다. 

봐봐, 이거네 이거

뭐가?

오늘 아침에 회의를 들어가는데, 직원들이 흘끗거리면서 큭큭거리는거야

왜?

내가 남색바지 입고 나갔잖아

딱 아기 키만한데, 하~얀 입술 자국이 있었던거지

크큭. 언제 묻은건지 모르지만 요거트든가, 치약 가루 남은거겠네

그래서 내가 검은바지를 못 입는다니까

아이를 혼자 한국에 보내버릴 사악한 계획을 짜는 부모들이지만, 어딜가든 아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서랍장을 정리하다 옆에 있는 거울을 보니, 헉! 

파마기가 있는 머리와 새로 자란 머리카락이 경계를 이루며 울룩불룩해 정신사나워 보입니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거울에 비친 딱봐도 애엄마같은 모습에 더 놀랐어요. ㅠㅠ

어후ㅡ 나 머리 해야겠어

한국 가기 전에?

아니~ 당연히 한국 가서. 내일모레 한국을 가는데, 왜 내가 체코에서 머리를 해?

참나, 한국에 남편도 없을텐데 누구한테 잘보이려고?

한국에서 돌아다녀도 딸이랑 같이 다닐거야- 딱봐도 아줌만데... 누구한테 잘보이기는... 자기만족이다, 왜!

한국을 갈때가 되면, 제가 좀 남편한테 말할 때 공격적인 것 같기도 해요.


한국에 도착해서 새롭게 적응을 해나가던 중,

2010년 친구의 결혼식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다음 연락이 끊겼다가 거의 7년만에 인스타그램으로 다시 연락이 닿은 중학교 친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나 9월에 한국 들어가거든

아, 진짜? 

응, 너 시간 되면 만나자. 아직도 안산 살어?

어, 안산 살어. 안산다~~ 안산다~~ 하면서 아직도 안산 ㅋ

친구와 주말에 만나는 거라 남편과 함께 차를 끌고 제가 편한 곳으로 와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인천 청라지구에 가까이 있어서 친구 가족이 청라쪽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친구 남편이 약을 잘못 먹고 토해서 상태가 안좋다는 거에요 ㅠ

너무 오랜만에 보는거기도 하고, 제가 곧 친정에 내려갈 계획이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 예정대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친구 남편님, 미안하고 고마워요)

청라신도시는 도시라는 이름에 맞게 상당히 크더라고요. 한국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상업지구이고 흔한 빌딩, 상점이겠지만 저는 오래되고 늙은 도시 프라하에서 왔으니, 반짝거리고 인공미 넘치는 청라지구가 좋더라고요. 

청라1주민센터는 주말에 주차가 개방되어서, 주민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주민센터 입구에서 얼쩡거리며 WIFI를 잡고 있는데, 저 멀리 한쪽엔 아들 손을, 한쪽엔 딸 손을 잡고 낯익은 얼굴이 다가옵니다. 

야~~~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게, 잘 살았어?

응응, 우리가 애엄마가 다 되었다

저에게 처음으로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준 이 친구를 다시 만난 게,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친구를 보는 제 마음은 아직도 14살인데…. 친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왠지 모르게 더 까랑까랑해진 목소리로 변한 것 같았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카리스마도 느껴지고요.  

친구를 만나 아이셋과 함께 아이들이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구수옥>이라는 식당에 갔습니다. 설렁탕과 손만두로 유명한 집인데요, 저는 딸이 잘 먹는 갈비탕을 시켰습니다.  

<구수옥>식당의 장점은 식당 안에 어린이 놀이방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 셋과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저희들에게는 안성맞춤!

애가 셋을 다먹이고 흘린것 치우고 하다보니,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친구 남편이 식당 놀이방에서 아이들과 잠깐 놀고 있는 사이, 저와 친구는 수다를 떨며 식사를 마쳤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친구가 

잠깐만 서 있어봐 

합니다. 그리고는 

에효~~ 이거, 딸랑구 짓이지? 어디가든 애기 엄마는 티가 난다~~

하며 제 원피스 옆구리에 묻은 흰 밥풀 하나를 떼어줍니다. 

감수성 충만하던 사춘기 중학생이었던 우리가, 벌써 애기 밥풀 붙이고 떼어 주는 애엄마가 되다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인천 청라지구 커널웨이 수변공원이 좋은 점이라면, 커널웨이 (커널웨이....라니 꼭 이렇게 영어로 이름을 붙여하는지는 의문이지만요) 쪽으로 산책길이 형성되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습니다.

 

저희가 커널웨이 구경을 하는 동안도 저희 또래의 가족들과 강아지들 산책을 많이 오더라고요. 커널웨이 주변이 청라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길을 따라 걷다 어린이 자동차 대여소가 보여서 1시간 15,000원에 자동차 렌탈을 했습니다. 대여소에서 대여 반납 시간을 적는데

지금 2:20분이니까 10분 더 드릴게요. 3:30분으로 쓰시면 되요

물어보지 않았는데, 그냥 덤으로 시간을 연장해주시다니!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체코에 살다 온 저는 감동 받습니다~ (체코에도 간혹 이런 일이 있기는 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신이 났는지 낮잠을 잘 시간이 지났는데도 졸립지도 않아보입니다. 친구 아들과 제 딸은 같은 2015년 생이라서, 차 안에서 동갑내기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원래 1인승인데 아가들이 작아서 둘이 탔는데, 친구 아들도 혼자 타게 해보려했더니만 ㅡ 딸랑구가 옆에는 타라고 하는데 핸들은 좀처럼 놓아주지 않더라고요. 딸은 자동차 반납할때도 떼를 부렸습니다. 

조금 뒤 스스로 울음을 멈추고, 렌탈숍 앞에 진열되어 있던 뽀로로 인형을 자기 것인냥 안고 나오더라고요 -_-;; 

이때까지 체코에서 뭘 사달라고 떼를 부리지 않은 건.... 그만큼 탐나는 물건이 없었던 걸까요. 

안산까지 돌아가는 길이 멀어 해가 지기전에 아쉬운 이별을 해야됐습니다. 

아이 셋이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데, "온니!온니!"하며 저희 딸이 가장 신이 났네요. 

아이가 언니를 잘 따르는 모습을 보니 

에효, 같은 한국 하늘 아래만 살아도 좋으련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연락이 끊겼던터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지만, 늘상 보던것처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하며, 

내 친구.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지쳐있던 제 마음이 따뜻해지고 뿌듯했던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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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라하밀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