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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아기랑 함께

체코가 한국보다 좋다 느낀 날

프라하 여행을 겨울에 오면 야외로 돌아다니기 춥긴하지만,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프라하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럽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프라하에 사는 저에게도 프라하 성탄절 분위기는 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프라하 생활을 하는 저에게 본격적인 겨울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려주는 날이 있는데, 바로 12월 5일 미쿨라시 성자의 날입니다.  

12월 5일은 미쿨라시(니콜라스) 성자의 날, 체코사람들은 무엇을 하나면요?

미쿨라시 성자나 천사, 악마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사탕이나 과자) 나눠줍니다.   

미쿨라시 행사 관련 사진을 찾다보니 2012년 사진을 찾았네요~ 미쿨라시 성자는 사진의 오른쪽 아래에 있습니다. 

미쿨라시의 날이면 아이들은 선물을 받으니, 당연히 12월 5일 = 선물 받아서 신나는 날이고요~ 

어른들한테는 거리에 사람들이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구경할 수 있으니 재미가 있습니다. 악마를 만나 깜짝 놀라거나 우는 아이들의 반응도 귀엽기도 하고요. 

2013년 12월 5일, 프라하 올드타운, 미쿨라시 성자 분장

이런 저런 흥미로운 풍경때문에 저도 미쿨라시 행사를 좋아합니다. 12월이 되면 미쿨라시 행사를 비롯해, 크리스마스 마켓도 곳곳에서 열리면서 낭만적인 프라하 모습이 되니~ 이 시기만 되면 있던 향수병도 날아가더라고요.  

올해 미쿨라시 행사는 더욱 특별한 이유가 두 가지 있었는데....하나는 딸과 함께 온 가족이 처음으로 음악 콘서트를 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에 도전했는데~ 그건 2018년 1월 6일까지 비밀로 할게요~ ^^ 

남편이 좋아하는 음악 밴드 The Tap Tap의 콘서트를 갔는데요, 미쿨라시의 날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가족단위로 콘서트를 많이 왔더라고요. 

The Tap Tap 체코 밴드는 조금 특별한데요, 밴드의 구성원들이 장애인들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워낙 체코에서 인기가 있어서 홈페이지를 보니 2018년도 콘서트 계획이 꽉 차 있네요. 

http://www.thetaptap.cz/#!koncerty 

콘서트 입구에 들어서자 겨울외투를 걸 수 있게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 

유럽 식당/공연 문화 TIP! 

유럽에서는 겨울에 식당이나 공연장 같은 곳을 들어갈 때, 두툼한 겨울 외투는 맡겨 놓고 들어갑니다. 장소에 따라 유료이거나 무료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고요. 

식당에서도 한국처럼 의자에 걸어 놓기도 하지만, 보통은 외투를 걸어 놓을 수 있는 옷걸이나 고리 같은 것을 별도로 마련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옷을 맡기고 콘서트장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남편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릅니다. 

어! 왔어요!!!!! 

아, 네. 여기 저희 부인이랑 딸이에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남편에게 카드기계를 내밀며) 기부 좀 해줘요! 많이 많이 

아, 해야죠 

남편의 카드를 기계에 꽂고 나서 기부 금액을 선택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콘서트장에서 카드로 금액을 입력하는 직접 기부가 효율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와!!!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 분이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아내인 저는 금액을 물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편, 얼마나 기부 했어?

XXX

우와~ 많이 했네. 그래서 저렇게 좋아 하시는 구

어차피 회사 통해서 콘서트 티켓 싸게 샀으니까. 어차피 그 돈이 그 돈이야~

그래그래. 잘했어


탭탭 밴드가 꾸준한 활동으로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남편이 기부한 금액 정도는 괜찮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미쿨라시의 날이니까요.  

계속 음악만 연주하면 공연을 보는 아이들이 지루해 할 수 있으니, 중간에 악마들이 천사처럼 속이고 나와 나쁜 짓을 하는 연극도 있었습니다. 

이번 TapTap밴드 공연에는 특별 초대 연주자가 있었는데, 미국 가수 'Gaelynn lea 갤린 레아' 라는 분이었습니다. 

TapTap밴드 공연이 있기 전 주말에 리허설이 있었는데, 통역을 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주말에 일하는 거니, 회사에서 아무도 가고 싶지 않아했고요. 한국여자랑 결혼한 체코남편은 많이 한국화가 된 것인지, 이렇게 일이 터지면 자신이 앞서서 해결하려합니다.

부인, 주말 오후에 통역하러 가도 괜찮겠어?

어~ 몇 시간 정도 걸려? 

한 2~3시간. 우리 딸도 데려갈까?

응, 나가는 거 좋아하니까. 통역에 너무 방해만 안되면...

관계자한테 한 번 물어볼게 

오케이~   

관계자도 주말에 자녀를 동반한다고 해서, 남편의 통역 봉사에 같이 따라 간 딸은 이 언니를 먼저 만났습니다. 그때 만난 것을 기억이라도 하는 듯, 갤린 레아가 등장하자 딸이 좋아서 박수를 마구 칩니다. (아래 동영상에 10분 정도에 등장합니다.)

한참 그녀의 연주에 감탄하고 있는데, 남편이 귓속말로 얘기합니다. 

부인, 우리 뒷편에 갤린 부모님 앉아 계셔 

어디? 

통역하러 왔을 때 같이 계셨어

뒤를 돌아보니 뿌듯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 어머니가 앉아계십니다. 

몸의 불편함을 뛰어 넘어, 음악 연주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며 1년에 200회 세계 투어를 다니는 연주자.

기를 낳아 길러보기 전까지는 잘 몰랐던 좋은 부모가 되려 노력하는 어려움.... 그녀의 연주와 함께 부모님을 마주하고 있으니, 장애가 있는 자녀를 이렇게 열심히 키워 내신 에너지가 강한 분들 같아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음악콘서트라서 딸과 신이 나 박수치며 한참을 공연을 보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남편, 혹시 이 공연장에 온 사람들 중에..나만 여기 아시아 사람인가?

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근데 있잖아... 노래가 이렇게 쿵짝쿵짝 하는데 사람들이 박수를 잘 안 쳐

어... 그러게

TapTap 밴드가 댄스곡 만큼이나 신이 나서 노래 가사를 다 못 알아듣는 저도 궁딩이가 들썩 거리는데, 체코사람들은 박수도 잘 안치고 몸의 움직임이 거의 없습니다. 클래식 공연처럼 음악 연주가 다 끝나야 박수치는 분위기더라고요. 

공연이 3/4정도가 넘어가니~~ 체코 사람들...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를 들썩거립니다. 살면서 노래방을 가본 경험이 다 있을만한 한국사람들과 비교하면, 체코사람들은 상당히 정적인 민족 같아요

준비된 공연이 끝나갈 무렵,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선물 증정식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부터 나눠주는데 뒤에 앉아 있던 몇몇 아이들이 앞으로 걸어나가 선물을 받는 모습을 보니, 살짝 조바심이 납니다. 

남편, 우리도 앞으로 나가야 되는거 아냐?

아이고,,, 걱정하지마. 한 사람당 한 개씩 다~~ 받을거야

아, 그래?

응. 근데 저기 천사, 우리 회사 직원이네. 자원봉사 하는거야 

남편의 말대로 모든 아이들이 선물을 받았고, 천사 언니와의 친분을 이용해(?) 저희 딸은 선물을 3개나 받았습니다. 

선물은 탭탭밴드를 지원하는 회사들의 로고가 박혀 있는 PEXESO(같은 그림 맞추기) 게임, 어린이 수첩, 공연밴드의 CD, 색칠 공부 + 작은 색연필이 들어 있었습니다. 미쿨라시의 날이니 막대 사탕 하나라도 기대했던 건... ㅜㅜ 엄마의 취향이었던 걸로~

딸은 이 선물을 받고 난 다음부터 그렇게 색칠 공부에 빠졌습니다. 색칠이라고 하기에는 줄을 찍찍 긋는 수준이긴 하지만, 외출했을 때 얌전하게 달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선물 증정이 끝나고 앵콜곡을 연주했는데, 한 장애인 연주자가 자신이 젊을 때 진탕 놀다가 술먹고 기차길에서 잠들어서 다리를 잃은 본인의 이야기를 노래로 쓴 곡이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담을 자조적인 가사로 쓰다니... 참 체코사람다운 유머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앵콜이 이어졌지만, 저희는 콜택시를 미리 불러 놓아서 자리를 떠야했습니다. 공연장을 나오는데 왼쪽편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았더라고요. 

탭탭밴드를 보면서 혹시 한국에 이와 비슷한 장애인 음악 밴드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검색해 봤는데, 한국도 움직임이 있어 보입니다. 2016년 기사라서 현재 얼만큼 진행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기타뉴스]장애인·비장애인 실력파 밴드 만드는 이상우
http://h2.khan.co.kr/201604141321001 

[조금 다른 밴드]
https://tumblbug.com/cdband2016

사실 GDP나 세계 경제규모처럼 객관적인 수치를 비교하면, 체코는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체코에서는 장애인 음악 밴드가 인기를 얻고 있고, 어린 자녀들과 장애인 밴드 공연을 함께 관람하고, 다른 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놓은 것.

이런 면에서는 체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며, 차별없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회적 약자에게 관대한 나라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해외생활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소한 공산품들은 한국이 튼튼하고 품질이 좋은편입니다. 연필이나 노트만 해도 재질과 디자인 면에서 한국제품은 확연히 다르고요. 

한국 공산품이 튼튼하기는 하지만, 콘서트장 입구에서 팔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제품 (운동/근육 보호 테이프)를 판매하더라고요. 체코 콘서트장에서 판다니 놀라기도 하고, 한국어로 "비비" 라고 쓰여진 것을 보니 반갑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