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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이제 다시 일상으로

2015년 올해 정신없이 힘들어하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달콤한 휴가를 8월에 보내고 왔습니다. 
돌아와서 다시 프라하 생활에 적응하느라 시간 가는 줄 인식을 못하다가
어느덧 11월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국에서 쉬면서 정성껏 달아주신 댓글도 다 읽어보고, 생각도 많이 하고... 
에너지 충전도 많이 해서 왔습니다. 

게을리 했던 블로깅도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시간이 좀 흘렀지만 밀려있는 포스팅도 하나씩 하려고 계획중입니다. 

프라하 생활을 다시 힘차게 할 수 있게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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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프라하로 돌아가는 비행기, 장장 11시간. 

흐릿한 회색빛 하늘 하래 빨간 지붕의 프라하가 보입니다.

다시 나의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짐이 너무 많아서 남편보고 꼭 마중을 나오라고 했어요. 

저를 보자마자 밝게 웃는 남편과 감격의 상봉을 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죠.


어휴~ 프라하 생각보다 덥네.


보통 프라하 8월 말 날씨는 꽤 선선한데,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한낮 최고 기온이 32~3도까지 올라갔습니다. 


부인이 한국에서 여름 더위를 가지고 온거야. 지난 주에는 시원했거든.


이러다가도 비오면 또 15도 정도로 내려가겠죠.


남편과 택시의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얼굴 상태를 확인하고.


남편~ 생각보다 얼굴이 좋은데?

아니야. 부인 없을 때 잠도 잘 못자고, 잘 못 먹었어.


한국을 가면 꼭 하는 일이 머리 자르기인데요, 

자르기 무섭게 길어버리는 머리 땜에 이번에는 좀 많이 잘랐는데,

거기다 파마를 했더니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더라고요.

머리 자르고 나니 나이 들어보인다고, 남편한테 미리 경고를 했죠. 

남편이 머리를 보더니 

부인 머리~~ 많이 아줌마 아니야ㅡ 

초큼 아줌마~~

 아 뭐야~~~~ 나 아줌마 맞지 뭐;


객관적인 상황으로 보면 이제 아줌마 맞죠 뭐 :) 아줌마가 어때서요~~


20대 후반에는 나이가 3자로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웠는데요.

현재 남편이 된 이 사람을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살다보니 서른을 넘어가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걱정되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남편이 곁에 있어 줌으로 받는 심적인 안정감과  

30대가 되면서 제 자신을 더 알아가면서 좋아하는 일과 시간에 집중하게 되었고요.


주변에 많은 영향을 받고 남과 비교하며 경쟁하며 살기보다는 

제가 갈 길을 묵묵히 살게 되는 것 같아요.



택시 안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잿빛 건물들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래피티의 광경들을 보며.


그래~ 다시 체코로 왔구나. 이 모습이 체코의 모습인걸.


하며 출발 전보다는 프라하의 모습을 조금 더 무덤덤하게 바라봅니다.



집에 돌아와서 밀린 무한도전을 보는데, 해외에 사는 한국분들께 음식을 배달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준하씨가 가봉을 방문하는 에피소드를 보고 있는데, 비행기만 30시간 넘게 타야하더라고요.


남편이 그걸 보더니

그래도 프라하는 서울에서 오는 직항도 있고, 

11시간밖에 안 걸리니까~~ 

엄청 가까운거네 :D :D :D  그치? 


가봉에 있는 아들을 위해 노모가 정성스레 음식 준비해 주시는 걸 보고 있노라니, 

한국에 있는 동안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했던 가족들의 사랑과 겹치면서 

어머님의 마음이 이해가 갔습니다.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한국의 가족과 함께 있었는데.... 

에피소드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흐릅니다.


아.. 부인- 울지마~~ 우리는 체코에 30년 안 살거야ㅡ


이번에는 좌석도 편하게 와서 시차 적응에 꽤 괜찮은 편인가 했더니만 오후 5시가 되니,

온몸이 낙지처럼 느물느물해집니다.

그리고는 몸은 체코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하늘을 둥둥 떠다니며 

저의 몸을 찾아 한국에서 영혼이 돌아오는 중인건지...

중간중간 잠결에 제가 한국 집에 있는 것인지,체코집에 있는 것인지 혼돈스럽습니다.


그러다 남편의 소리가 들리면, 창밖으로 체코어가 들리면,

아~ 체코구나.


깨달으며 얼른 영혼을 체코로 불러 들이려고 해봅니다. 


한국에 가기 전에 SKONTO 라는 가구 매장에 가서 필요한 수납장과 테이블, 침대 틀을 봤는데요.

다행히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IKEA 가구 보다는 재질이 튼튼해 보이고, 다행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들도 있어서 온라인 주문을 했습니다.


분명 8월초에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ㅡ8월 말이 가까워서야 배달이 온다고 하네요.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배달까지 꼬박 3주 걸렸습니다.

그리고 가구 배달 시간도 9시 - 12시 사이에 온다고 하네요.

허허허~~~ 업무 처리 속도를 보니, 유럽에 살고 있음을 확연히 느끼는 순간입니다.


예전 같으면


3주나 걸린다고 ??? 그리고 무슨 배달을 3시간 사이에 온다고 해 ???

그 3시간 동안 집에 꼼짝 않고 있어야 한다고??"


그랬겠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하는 주말이기도 하고, 오후에는 가구 상자를 분리수거도 좀 할겸 

나가서 같이 공원 산책도 가고 싶었는데,

남편은 낙지처럼 촥 ! 침대에 퍼질러 붙어있는 부인의 모습만 보고 있네요.


오전 10시부터 가구 배달 오자마자 하루 종일 가구 조립을 하던 남편이,

한 5시정도 되자 얼추 정리가 되었는지 묻습니다.


부인~ 우리 나갈 수 있겠어?

남편~~ 미안.나 안될 거 같아.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그래. 그럼 나 상자 쓰레기만 버리고 올게.


사지에 힘이 풀린 상태에서 겨우 눈만 빼꼼히 떠서 대답하고 다시 혼돈의 수면 상태로 빠져 들었습니다.


저녁도 안 먹고 그렇게 한참을 자다가 몇시가 되었는지 파악은 안되었지만 

남편이 자려고 조심히 들어와 침대 옆에 눕는 모습이 보입니다. 


남편~ 미안해. 시차적응이 장난이 아니네.


하고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아냐~ 괜찮아. 얼른 또 자. :-)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가 새벽3시가 되니 화장실도 가고 싶고 배도 고파서 일어났습니다.

소파에 앉아 잠깐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데, 

제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저희 집 개도 잠에서 깨서 저벅저벅 소파로 걸어옵니다.


올려달라고 낑낑거려 올려줬더니, 앞으로 아무데도 가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제 발을 묶어 놓듯 자기 몸을 올려 놓고는 "흐음~~~~" 깊은 한숨을 쉽니다.


모자란 저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이해해 주는 남편과 주인밖에 모르는 생명들이 있어, 

체코의 집도 편하고 따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