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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첫 데이트

한국은 만난지 100일,200일, 300일... 1년, 2년 등등. 많은 기념일을 챙기는 문화인 것 같아요. 


남편이랑 데이트를 하면서 한 말이 있는데요.


한국 남자들은 "이벤트" 잘 하잖아. 


예를 들면 깜짝 생일파티라던가, 차 트렁크에 풍선 가득담아 놓고 짠~~~ 하거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촛불 길/하트를 만들어 놓는 이런 이벤트들이요. 


데이트하면 여자친구에게 어떤 이벤트를 해줄까 남자분들은 고민될 것 같아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요즘 세대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자상한 편인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남자는 무게잡고 강해야한다는 덕목이 강조되었다면

요즘은 친절하고 다정한 남자가 이상적인 남자로 보여지니까요. 


외국인 여자 친구들한테 들은 한국 남자의 깜짝 놀랄만한 자상함 중에 하나는 

여자친구 가방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 화장실 앞에서 남자 분이 가방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웠다 하더라고요. 


외국인 남자친구들이 볼 때 놀란 한국여자의 자상함은 3단 도시락 싸주는 모습이요. 


이렇게 서로에게 다정한 한국남녀들이 

종종 인터넷 기사를 통해 서로를 비하하는 댓글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평균적인 한국남자들보다 훨~~~씬 못하는 백인남자들도 많고, 

모든 한국여자들이 백인남자만 보면 환~~장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남녀가 싸우는 기사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한국남자나 한국여자나 다 괜찮은데 - 

아무튼, 서로 감싸주는 한국 남녀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말이 옆구리로 좀 샜는데요,,, 여러분은 첫 데이트를 기억하시나요? 

서로 호감은 있지만 아직은 서로를 잘 몰라서 뭘 먹어야할지, 뭘 해야할지... 서먹한 첫 만남.. 


저와 남편은 첫 데이트 날짜를 기억하지 않으려해도  수 있는 이유가요, 

남편과 제가 불꽃이 튄 날이 할로윈 파티였기 때문입니다. 

서로 이벤트를 챙기는 스타일들이 아니다보니,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것 아니지만

10월 말이 되면 저절로 첫 데이트의 아련한 기억이 돌아옵니다. :)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한국도 할로윈파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죠. 

이 곳 체코도 할로윈파티를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할로윈 시즌이 되면 상점의 장식도 호박이 많이 보이고 

몇몇 식당에서는 할로윈 메뉴를 판매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첫 데이트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할로윈 날짜가 다가오면서 남편이 묻더라고요. 


부인 ~ 곧 할로윈인데,, 우리 첫 데이트 기념도 할 겸, 뭐할까? 


글쎄.... 아 ! 영화볼까? 그래비티 3D 로. 


그래그래. 그럼 영화표 예약해 놓을게. 



일찍 끝날 줄 알았던 일이 시간이 많이 걸려서 남편이 먼저 쇼핑몰에 도착해서 영화표 끊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쇼핑몰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죠. 


남편~ 어디에 있어? 


응. 나 1층 안쪽에 있어.


그래. 알겠어. 


쇼핑몰 통로 안쪽으로 쭉~~ 걸어가면서, 그 안쪽에 무슨 상점이 있나 생각해보니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혹시... 이 남자 프라이팬 이것 저것 두드려 보고 있는 거 아니야? '


아니나 다를까, 이남자~~~ 냉장고랑 세탁기 구경하고 있더라고요. ㅋㅋ 

근처에 게임기도 있고, 새로나온 휴대폰 기기들도 있는데 - 

냉장고랑 세탁기 둘러보고 있던 남편의 모습을 보니- 결혼하고 집 산 남자 티 팍팍내고 있습니다. 


남편이 마음에 든다는 냉장고랑 세탁기를 둘러봤는데, 취향이 비슷해서 다행입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한국에서는 가전제품 코너를 가면 반짝반짝 냉장고의 디자인이 눈에 확 ! 들어와서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고 했는데... 체코에 있는 냉장고는 디자인에서 크게 구매욕을 당기는 게 없더라고요.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영화 시간이 되어서 영화관에 갔습니다. 

그래비티는 영화 평점도 좋고,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영화관에서 3D로 보고 싶었어요. 

입구에서 3D 안경을 받고 자리에 앉았어요. 남편이 갑자기 제 얼굴을 더듬더듬하더니 장난을 칩니다. 


뭐야, 부인 얼굴은 3 D 아냐. 

그래! 판판한 완전 평면이야! 어쩔래 !! 참나 ... 
코도 그냥 콧구멍만 있지????  


부인, 있잖아... 나는 부인이 코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ㅎ 



이렇게 장난을 칩니다. 아놔 ~~~!! 그럼 제가 그러죠. 



그래 좋겠다 ! 코 높아서. 이 코쟁이 ! 


아 ㅋㅋㅋㅋㅋ 코쟁이 ㅋㅋㅋㅋㅋ 



남편은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 보고 코쟁이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 재밌고 귀엽다더라고요. 


그래비티 영화는 큰 사건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우주공간에 있는 것처럼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서는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우주 공간에서의 극도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고요. 


금요일에 영화를 보고 주말에는 점심때까지 늦잠을 잤습니다. 

한국분들에게 사랑받는 프라하에 살면서 주말이면 특별한 일이 있을 거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저는 프라하 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리면서 주말마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매일 아침 출퇴근하며 외국인들에 둘러싸여 낯선 분위기를 많이 느끼기도 하고ㅡ

주말에는 집에 머물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기도 해요.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평일에 또 다시 낯선 생활을 버틸 수 있으니까요. 


프라하의가을



주말 아침에 남편이 저보다 더 늦게 일어나는데요, 

저는 먼저 일어나서 거실에서 이것저것하다가 몸이 추워지면 다시 남편 옆에 이불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괜히 남편을 깨우고 싶어서, 남편 자고 있는 이불로 들어가서 차가운 손을 엉덩이에 갖다 댔어요. 

으으~~~~! 차가워. 


아~~~ 엉덩이는 괜찮다며ㅡ 



제가 장난치는 걸 좋아해서 결혼 초장기에 목 뒤랑 허리에 제 차가운 손을 갖다 댔는데. 

남편이 진지하게 화내서 싸울 뻔 한 적이 있었거든요. 

겨울이면 차가워지는 손을 따뜻하게 하는 건 체온이 가장 좋다보니..남편과 상의를 했어요. 


나는 손이 차가운데... 


그래도 목이랑 허리는 기분이 별로야. 


그럼 이렇게 계속 손 차가우면 어떡하지 


흠... 그럼 엉덩이만 허락해줄게. 


이렇게 합의를 보고, 제 손이 차가울 때는 남편의 엉덩이로 데웁니다. 

차가운 손을 남편 엉덩이 손을 꼬물꼬물 넣고ㅡ 따뜻한 온기가 전해오니 좋더라고요. 

엉덩이를 내어주는 남편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남편~~~ 서방님 ! 여봉봉 ! 했더니ㅡ 


남편이 

-_- : 뭐야..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니ㅡ그냥. 오랜만에 이렇게 늦잠자고 빈둥거리니까 좋다구~~ 

우리남편 Hezky (멋있다). 


남편 헤스키? 


응. 우리 남편쉥키~~~ 


헤스키(Hezky)
 쉥키 ? 헤쉥키 ?



이러고 농담하고 있다가 갑자기 남편이 제 팔꿈치를 막 꺾더니만 팔꿈치에다가 뽀뽀를 해야겠답니다. 
 

아ㅡ 왜 그래~~~팔꿈치에다가?


응. 왜냐면 팔굽 좋으니까. 

팔굽이 뭐야 ㅋㅋ 팔꿈치지. 근데 남편..아직도 부인이 좋아? 


응. 처음 데이트 할 때만큼이나 좋아. 



여자들은 종종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저희 둘은 할로윈 시즌만 되면, 서로를 알아봤던 첫 데이트의 기억을 떠 올리곤 합니다. 

지금처럼만 설레이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는 분께 전해들은 이야기인데요. 

결혼생활 10년 넘은 부부이야기였는데요. 시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대요. 

아들 된 도리로 남편분은 시어머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부인과 자식들에게 많이 소홀해지셨나봐요. 서운한 마음에 부인은 잔소리를 했고요. 


그러자 남편 분이 이런 말을 하셨대요. 


"부인과 자식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내 인생에 단 한 분이야"


라고요. 

하... 이 얘기를 전해듣고 마음이 아팠는데요, 부인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결혼이란 어떤 의미인지... 부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