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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살면서 '뭣이 중헌디?'

지난밤에 회사 레포트때문에 정말 날밤을 꼴딱 샜습니다. 매달 이 레포트를 쓸때면 왜 이리 밤을 하얗게 불태우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간 방해없이 쭉~~ 살펴야하는 복잡한 보고서라서님지, 뇌세포들이 부지런히 정신차리나봐요. 새벽 중간에 졸립지도 않더라고요~

아침 동이 터서 창가가 밝아질쯤 딸을 깨우러 갔습니다.

졸려하는 딸을 안아 소파에 앉히고,

요거트 씨리얼?
응!
요거트 데워줄까?
응응!

환절기라 얕은 감기가 걸려서, 아직도 기침을 조금하기에 요거트를 데워주었습니다.

요거트를 먹는동안 옆에 앉아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레포트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밤샘에 멍~~ 하며 꾸물거리다 보니 시간이 늦었습니다.

아이쿠야, 딸랑구 우리 늦었다
많이 늦었어요, 조금 늦었어요?
오늘은 많이 늦었어
그럼 엄마 서둘러! 출동!

아마 <타요버스> 에서 배운듯한 출동!! 이라는 말과 함께 밖을 나왔습니다.

어제 밤에 내린비로 얼굴에 닿는 바람이 상당히 차갑습니다.
어린이집으로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종종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다, 산책 나온 개들이 보이면

엄마~~ 멍이 봐봐! , 아이 귀여워!

한참 강아지 구경도 했다가ㅡ
공원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도 주워서 관찰하다가.

일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보통 애들 픽업을 빨리 하기에, 남편도 일찍 나갔습니다. 5시30분 정도 되었을꺼 현관문이 열리며 아빠랑 집으로 들어 옵니다.

내 사라아앙앙~~~~왔어?

라고 하는데 갑자기

엄마, 싫어!!!!!!!아아아악 !!!!!!

소리를 꽉! 지르더니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우는 와중에, 저희집 개는 문이 열린 것을 알고 산책을 가고 싶어 낑낑거립니다.

다슬이 (개 이름) 산책 좀 다녀올래, 남편?
어, 그래

남편이 산책을 가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저는 양팔을 벌려

딸~ 엄마한테 와

하는데, 고목나무 매미처럼 아빠 다리를 붙들고 떨어지지 않습니다.

엄마 안아 안 할래?
(고개 절레절레)
흠.....

눈도 마주치기 싫은지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네.딸랑구 무슨 일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단단히 삐친거 같은데....

남편이 산책을 나가자 다시 한참을 소리지르며 울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울었을까....

울음 소리가 진정 되었을쯤 아빠가 들어왔고, 아빠한테 꽁 안겨서 한참을 더 울었습니다.

한껏 울었는지, 울음 소리가 가라 앉았을 때

엄마 안나(안아)!

딸이 얘기합니다.

작은 몸을 꼭 끌어 안고 딸한테 물었습니다.

딸~ 왜 울었는지 엄마한테 얘기해줄수 있어?

엄마가~ (훌쩍) 엄마가~ (훌쩍훌쩍) 어제밤에 그 한다고... 으아아아아앙~~~
응? 뭐라고? 엄마가 잘 못들어서, 어젯밤에 뭘했다고?
공부했다고 (흐규규규)

제가 밤새 일하는 것을 공부하는 줄 알았나봐요.

남편 말로는 어젯 밤에 제가 거실에서 일하는동안 자다깨서 저를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엄마찾으러 거실로 가고 싶은데 잠은 너무 오니 몸을 일으켜 나갈수는 없고.

아... 어제밤에 엄마가 거실에 있어서 우리 딸이 슬펐구나
엄마가 공부하는데, 어제밤에, 거실나가야... 으아아아앙

지난밤 잠결에 침대에서 엄마를 찾았는데, 엄마가 옆에 없어서 서러웠나봅니다.

아니, 그런데 아침에는 너무나 멀쩡하다가 이렇게 느닷없이 저녁이 다 되서야 폭발하다니요 ;;;

이때까지 딸의 행동을 생각해보니,딸은 감정을 담아두었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 표현하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홀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닉 여행을 다녀왔와서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아~~~~냐하하하

하고 신나게 별일없는 듯 반겼거든요ㅡ그때 딸이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왠걸요.

저녁에 피자를 시켜서 먹다 갑자기 설움이 북받쳤는지, 피자를 먹던 도중에

으흑흑흑

하더니 서글피 울기 시작합니다. 

1년후, 이탈리아 피렌체로 홀로여행을 다녀왔을 때는 다행히 저녁을 먹다가 우는 일은 없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아이랑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육아로부터 휴가인데요, 저는 1년 주기로 육아어려움의 위기가 와서 혼자 여행을 다녀와야하는 것 같아요)

이제 저녁 먹다가 울지 않네, 더 컸구나...

싶어 의젓해보였지만, 다음날 어린이집에 가서 점심 먹고 나서 5번이나 토를 해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밀려 있는 일을 제쳐두고 아이를 데리러 허겁지겁 뛰어가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뭣이 중헌디?'

한 번 사는 인생, 살면서 내가 쫓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아이가 생기면서 함께 나에게 온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

엄마가 된다는 것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서툴, 꾸준히 자라는 아이만큼 저도 함께 성장해 나가는 건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