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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움

사라진 크림빵의 범인은....?

​한국은 이제 추석 명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체코에 있었으면 괜시리 쓸쓸한 마음 들었을 수 있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다양한 추석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음식으로 보면 아무래도 한국음식과 아시아 음식이 식재료나 양념이 체코나 내륙 유럽 음식보다는 다양한 편인 것 같아요.  

체코에서 체코사람들의 주식은 빵과 고기, 감자로 볼 수 있는데요, 체코생활을 하는 제가 한국에서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빵! 입니다. 

아니, 체코 주식이 빵이라 해놓고,,,, 한국에서 빵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체코빵들은 주식이다보니 달지 않은 곡물 느낌이라, 한국의 간식스타일의 빵이 너무 먹고 싶은거에요. 

특히, 생크림과 노란크림이 들어간 크림빵과 달콤한 팥이 들어간 팥빵이 먹고 싶습니다. 

10년 전 체코남편이 한국에서 생활을 할 때 한국빵에 대한 불만이 있었는데

한국 빵들은 너무 달아. 그래서 밥 대용으로 먹기는 부담스러워 

10년 전만해도 한국사람에게 빵이 간식의 의미가 강했으니까요. 요즘은 젊은층의 빵 소비율도 높아지며 호밀빵처럼 담백한 맛의 빵으로 식사 대신 먹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한국에 오기 2주 전 쯤 엄마랑 전화를 했는데요

딸~~ 한국오면 뭐 먹고 싶어?

음…. 잘 모르겠네 

그래도 한가지 말해 봐봐

한국을 떠나 온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음식도 뭐가 있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네

했는데,

왠걸요….한국 도착해서 상점 지나갈 때마다, 이것도 먹어보고 싶고~ 저것도 먹어 보고 싶고~ 식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어차피 체코에서 못 먹을거라 잊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해요. 

서울에 외할머니댁을 갔는데 할머니가 카스타드를 좋아하셔서 빵을 사러 갔습니다. 할머니를 드릴 빵을 사는 김에 제가 먹고 싶은 크림빵도 사려고 보니, 우와~~!!! 크림과 단팥이 함께 들어 있는 빵이 있습니다. 냉장보관하라고 해서 다음날 아침에 먹으려고 냉장고에 고이 넣었습니다. 


저녁을 일찍 먹고 딸을 재우고 9시 정도 되자 냉장고에 있는 크림 단팥빵이 생각이 납니다. 

흐음…… 크림 단팥빵. 크림과 단팥이 어우러지다니, 환상의 조합이여!

하아… 먹고 싶다. 지금 먹으면 다 살로 갈텐데- 참았다 내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먹어야지

그렇게 밤에 빵을 먹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다음날 아침 냉장고를 열었는데, 빵이 안.보.입.니.다.

(혹시 엄마가 드셨나?)

엄마! 혹시 여기 세모 모양에 비닐에 담긴 빵 못 봤어요?

어? 빵? 못 본 거 같은데

이상하다… 분명히 내가 여기에 넣은 것 같은데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도저히 안 보여서 포기했습니다. 몇 분 뒤 엄마가 

아하...... 혹시, 자그마한 비닐에 달랑 하나 들어 있던 거 말하는거야?

어, 그거요

아~~ 그거 아까 할머니가 다른 냉장고에 옮겨 놓으시는 것 같던데 

하아… 

저희 외할머니는 요즘 드시고 싶은 음식이 보이면, 베란다에 있는 할머니 전용 냉장고로 옮겨 놓으시는 듯 했습니다. 

96세이신 할머니는 요새 입맛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런 할머니가 숨겨버리실 정도로 맛나보였거죠. 그걸 다시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크림빵은 다음 기회에 먹기로 하고 순천 친정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아기 기저귀도 떨어지고 간식거리도 사야해서 대형마트를 갔는데, 빵집 코너가 보입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부모님이 드실만한 것과 아기가 먹을만한 빵, 제가 먹고 싶은 크림빵을 골라 담았습니다. 

저녁 밥을 먹고 난후 늦은 밤이 되자 다시금 빵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습니다. 

하아… 먹고 싶다. 빵 먹고 싶다...... 야식은 건강에 해로우니, 참았다 내일 먹자

아침에 눈을 떠서 빵 봉지를 먼저 확인했는데, 

이.럴.수.가  여러가지 빵 중에 크.림.빵.만 안 보입니다. 

흠…… 엄마는 빵을 안 좋아하시고, 20개월 된 딸이 찾아서 먹었을리는 없고…. 크림빵은 아빠가 드신 듯 합니다. 

사실 아빠는 당뇨가 있어서 크림빵 종류는 피하는 것이 좋고, 저녁밥 먹고 야식으로는 더더 안 드셔야하는 건강상태입니다. 그래서 밤중에 빵이 사라지리라고는 전혜 예상을 못했던거죠. 

너무 먹고 싶은 크림빵이었지만, 아빠도 드시고 싶으셨으니 드셨겠죠. 아쉬운 마음은 팥빵으로 달래고, 아빠도 크림빵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몰랐던 제 탓도 있으니 패스~~ 

한국오면 먹으려 했던 크림빵은 여전히 '온 놈'으로('완전히'의 사투리) 먹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진짜 머리속은 차안에서 빵집만 지나가도 '크림빵, 내 크림빵…' 하는 상태가 되었어요. 

며칠 뒤, 드디어 빵집을 갈 기회가 생겼으니! 

제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동안 엄마가 아이를 봐주셨는데,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잠시 시간이 났습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근처에 빵집으로 달려갔죠. 

노란크림 빵도 사고, 팥빵도 사고, 크로와상도 사고 오예~~ !! 

룰루랄라~ 빵 봉지를 흔들며 신나게 집으로 갔습니다. 봉지에 놓아두었다가 지난번처럼 아빠가 또 드실 수 있으니, 크림빵만 꺼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우후후~ 내일 아침은 저 크림빵을 입에 넣고~~ 오호호~~~

촉촉한 크림을 입안 한가득 퍼지는 상상을 하고 잠들었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서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저는 끝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내 크림빠아아아아아앙앙!!!

엄마는 당황하시며, 

무슨 크림빵? 

아빠가 또 드셨네! 또 드셨구만

어제 빵 사왔잖아

그러니까, 내가 크림빵만 사 놓으면 할머니가 드시고, 아빠가 드시고. 자꾸 다른 사람이 먹어서, 이번에는 진짜 내가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 놨는데

한번 잘 찾아봐~

아녀아녀, 내가 일부러 여기 요구르트 뒤에 살짝 숨겨서 똭! 놯는데

그럼, 어제 밤 늦게 아빠가 드셨나보네

히잉 ㅠ.ㅠ

가족이 많은 집에 사 놓은 음식을 누구의 것, 누구의 것으로 나누는 것이 조금 치사해보일 수 있지만, 이번에 크림빵은 너무 간절했어요 ㅠㅠ 

하아… 내 크림빵

아빠는 일이 있으셔서 외출을 하신 상태였고, 집에 전화를 하셔서 아파트 입구로 내려오라 하신 뒤 엄마를 태워 순천 시장에 장을 보러 가셨습니다. 

삐삐삑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빠가 들어오시며 봉지 하나를 제 앞으로 툭! 던지십니다.  

아놔~ 옛다~! 여기 빵 잔뜩 있다

우와!!!! 크크큭

이 빵 사느라고 비를 쫄딱 맞아부렀구만

정말 감사합니다, 아부지~

아빠는 시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사라진 크림빵에 사연을 들으시고, 딸에게 크림빵을 사주신다는 일념하에 비를 뚫고 빵가게로 뛰어가 빵을 사오셨던거죠. 

범인(?)이 이실직고 하고 원래 물건+ 추가 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사건 종료!

여러가지 빵이 있었지만,,,,, 

제가 한 음식에 꽂히면 지겨워질 때까지 계속 먹는 버릇이 있거든요. 아빠가 사다주신 흰 크림빵 1개, 노란크림 빵 1개로는 크림빵에 대한 갈증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조만간 빵집 갈 일이 있으면, 또 다시 크림빵을 사지 않을까 싶어요. 

단, 이번에 살 때는 집으로 가져오지말고, 바로 입속으로 넣어버려야죠, 우하하하 


+ 추석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 크림빵 사건 이야기가 나와서, 저희 형부가 비싼 빵집에서 크림빵을 거의 5만원어치 사다주셨답니다. 형부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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