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의 6개월에 거쳐 집을 찾아 헤매다가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서 이사합니다.

제 인생의 첫 둥지 마련이 프라하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하고 나와 전세와 월세를 살다가 

나와 남편의 둥지인 우리 집이 체코에 생긴다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살림을 정리 하다가 주변 유럽 여행 다녀온 브로셔며, 기념으로 가져왔던 명함들.. 

여기저기서 가지고 있던 영수증들... 보면서 하나하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만감이 교차하는 이 기분을 어찌 설명해야할지요. 


잠시 멍~~때리고 있던 저를 보더니 남편이 


추억하고 있는거야? 


응. 기분이 진짜 이상해. 체코에 한 10년 산 것 같은 기분이야. 


아무래도 외국에 살다보면 다양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까. 

심리적인 기간이 긴 것 같아. 



처음에 살고 있는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한국에서 짐을 적게 가져오려고 했어요. 

체코로 오기 전 날 밤까지도 짐을 줄여보겠다고 이리저리 밤새 가방을 싸고 풀고를 반복하다가 

후줄근하지만 버리기는 아까웠던 면티셔츠 같은 것들은 포기하고 집에 있는 박스에 놓고 왔어요. 


체코에 도착하고 나서 엄마랑 전화하는데,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딸은 기분 안 이상해? 엄마는 딸 옷들 보면서 섭섭하던데.... 

하..... 우리 딸이 정말 갔구나..하는 생각에-  

옷도 좋은 옷도 아니고,,,, 


응. 엄마~ 많이 입었던 옷이라서, 짐 줄이려고 놓고 왔지. 


 

이 얘기할 때는 담담했는데,,,, 

지금 제 짐을 정리하면서 - 

갑자기 제가 떠나고 나서 덩그러니 남겨진 후줄근한 옷들만 보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 

콧등이 시려오네요. 


짐을 싸면서 살림을 살펴보면서.... 체코로 올 때 큰 짐과 기내가방 하나만 들고 달랑왔었는데, 

살다보니 어느새 살림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있네요. 


물건에 담긴 시간과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남나봐요. 

물건을 하나 둘씩 정리하면서 체코 생활에 정착하기까지,

비자 문제며 사소한 체코 문화와의 차이를 경험하며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10년을 산 것처럼 고민 걱정을 했는데도, 아직까지도 주구장창 남아 있는 인생 숙제들을 보면 

하나를 풀면 또 다른 하나가 생기는 끝없는 샘물 같아요.  


2013년의 끝자락에서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내년에는 2013년 보다 조금 더 힘든 일들 무던하게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으면 좋겠네요.


틴성당 - 11세기부터 있었던 이 성당은 100년 뒤에도 200년 뒤에도 이 모습 그대로겠죠



체코에 살며 다양한 고민들로 뭔가 마음이 지치거나 머리가 복잡할때는 요리를 합니다. 

싱싱한 재료를 골라서, 썰고 자르고 볶고 하다보면 머리가 맑아지거든요. 

지난 밤도 그런 날이었나봐요. 


일이 있어서 밤 9시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김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밤 9시에 김밥말기라니... ㅎ


김밥용 김은 집에 있으니까 마트에 들러 속에 들어갈 재료를 사와서 지지고 볶고~~~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손과 발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머리가 맑아집니다.

 

스트레스 해소용 요리였던 이 김밥은

뜻하지 않은 센세이션을 가져왔어요.

 

[소곤소곤 일기] - 체코사람이 보고 놀란 김밥재료는 무엇일까요

[소곤소곤 일기] - 김밥을 여기에 찍어 먹는 체코사람이 있다고?

 

Monster University라는 영화를 보면서 남편은 김 위에 밥을 놓고, 저는 재료를 넣어서 말고~ 

이렇게 합심해서 김밥을 말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놀래켜서 에너지를 얻는 괴물들이 이야기였던 몬스터 주식회사 영화를 재밌게 봐서 

이것도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영화 처음부터 왜 그렇게 사람들이 외눈박이 친구를 미워하던지요.

갑자기 체코에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과 겹쳐보이면서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람들과 왜 어울리지 못하는지... 

다르다는 이유로 미움받고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에휴~~~~ 


이럴수록 저를 잘 알아주는. 

굳이 모든 정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제 자신을 그대로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아는 언니가 미국에 살고 있는데, 예전에 저한테 물어본 게 생각났어요.  


체코에 살면서 제일 그리운 게 뭐야? 


퇴근하고 친구들이랑 맥주 한 잔 하면서 수다 떠는거요. 


하루가 힘들어도,,,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어서 친구랑 얘기나누고 나면 마음이 든든했던 것 같아요. 


바닷가 근처에서 자란 저는, 한동안 바다를 보지 않으면 바다가 그리워지는데요.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푸르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한 없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한 번은 남편한테 바다에 관해 물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바닷가에 가면 좋아? 


응. 바다 좋지. 


그런 바다를 한동안 못보면 막~~~ 바닷가 가고 싶고 그래?


아니. 그런 기분은 잘 안들어. 


아... 그렇구나. 


그냥 강이나 호수봐도 괜찮아. 



아무래도 체코가 내륙국가이다보니 바닷가랑 멀다보니, 바다를 보면서 자라는 환경은 아닌 거죠. 

하지만 한국 같은 경우는 삼면이 바다인 나라이다보니, 쉽게 바다를 접하다보니 바다가 그리운가 봐요. 

바닷가 근처에서 자란 저는 더더욱 바다를 그리워하고요.  


바다가 그릴울 때는 바닷가를 다녀온 사진을 보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올 초에 바르셀로나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틀었는데요


여수 밤바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눈물이 또르륵 흐릅니다. 


남편이 거실로 나오더니, 소파에 앉아 눈물 흘리고 있는 저를 보고


아이고... 여보... homesick왔어? 


그냥 조금. 너무 많은 일들을 한 번에 감당하려고 하니까 조금 벅찬가봐 

여보ㅡ 울지마... 부인이 울면 나는 너무 아프다.


 응. 알았어ㅡ 



쇼파에 우두커니 앉아 마음을 정리합니다. 슬픔은 오늘로 가시고 내일은 밝은 모습으로 시작할 수 있게요.

남편이 침실에 들어가서는 저를 부릅니다. 


빨리와~~~~ 여보. 침대로 빨리와. 얼른 자자.  

응. 알겠어.



침실에 들어가자 살포시 저를 안아주고 이마에 뽀뽀를 해줍니다.  



부인 절대로 다시는 울지마. 알았어? 

음.... 


부인이 울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 못난 체코에 데려온 것 같아서. 


 아니야.. 내가 좋다고 왔지... 


이제 눈물 없어. 여기는 내 Kingdom이야. 울면 물... 몸... 물...봄.... 


물봄? 그게 뭐야? 


illegal 


아~~~ 불법 ? 으흐흐흐흐 


그래! 그거. 그렇니까 울지마. 알겠어?  



머리속이 복잡해서 쉬이 잠이 들지 않는 오늘 같은 밤에는 유난히 남편 품에 깊~~히 안겨 잠을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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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라하밀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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