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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아기랑 함께

체코남편에게 어려운 육아 한국어

이때까지 살아 오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면 간접 경험을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한국에 있을 때 주변 친구들이 서서히 결혼을 하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결혼생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남편도 연애할 때 모습과 비슷해서, 체코에 와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생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변에 친구들이 출산할쯤 체코이민을 와서일까요… 친구들이 가까이에 있지 않다보니 육아에 대한 정보를 직접 듣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나마 출산이 가장 일렀던 친구는 지방에 살았고, 체코생활 시작하고 한국에 처음 들어갔을 때 8개월 첫딸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온다고 고향친구가 문자로 물어봅니다.


한국 오면 뭐 가 제일 먹고 싶어?

나? 집밥ㅠㅠ

메뉴는 어떤걸로 할까?

해물이면 다 좋지


정말 순수하게 집에서 차려진 밥이 먹고 싶어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8개월된 아이엄마한테 밥상차려달라했으니 ㅜㅜ 저도 참 철이 없었던 덧 같아요. 


친구가 낙지볶음과 쌈밥을 정성스레 준비하는 동안, 저는 친구가 미처 마무리 못한 아기 이유식ㅡ밤을 체에 걸러서ㅡ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제가 밥을 먹는 동안 친구는 자기 밥은 먹는둥 마는둥 곱게 체에 거른 밤을 아이에게 먹이느라 정신없었고요.


식사를 마치고 친구는 설거지를 하고 저는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트림시켰습니다. 아기가 피곤했는지 제 무릎에 앉은채 잠들었고요. 아이를 재우고 친구와 사는얘기를 나눌쯤 친구 신랑이 집에 왔습니다. 


오랜만에 친구 만났는데, 잠깐 나갔다 와~ 


그래서 저희는 육아 바톤 터치 하고, 근처에 가벼운 칵테일 한잔 하러 나왔습니다. 


휴우....이제 살 것 같다. 오늘 외출 아니었으면 정말 돌아버릴뻔했어


그때는 막연하게 아.. 힘들었나보구나... 했는데 아기를 키우면서 이제야 친구의 말이 뼈저리게 공감이 갑니다. 


나의 영원한 반장~~~!!

혹시나 글 보고 있으면, 내가 이제서야 네가 정성스레 해 준 밥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눈물 울컥하게 고맙다는 거 얘기 전하고 싶어    




돌이 지나고 나니 한숨돌릴만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답이 없는 숙제 같습니다. 아이마다 성격이 다르다보니, 육아방식에 정답도 없어 보이고요. 다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아기 키워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힘든 욱아 속이 상상치도 못했던 즐거움에 까르르르 웃게 되는 날들도 있습니다. 아기의 재롱도 있지만, 오늘 제가 포스팅하고픈 내용은 아빠의 육아로 웃게 된 이야기들입니가.


하루는 아기가 손을 쥐었다 폈다하는 잼잼을 합니다. 


우와! 잼잼 할 수 있어?

이렇게 해봐ㅡ 잼잼잼잼 잼잼잼잼


제가 "잼잼잼잼" 하는 걸 언제 남편이 들었는지,,, 


다음날 아기 손을 가만히 보던 남편이


잠잠잠잠~~ 


합니다. 


아기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기어다니다 틈새에 끼고, 집고 일어서다가 여기저기 머리를 쿵! 박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오전에 일이 있어서 챙겨서 나가려는데 엄마의 외출을 아는건지;;;

아니면 잠이 오는지 칭얼대서 준비하는 동안 잠깐 침대에 있게 한다는 것이 그만 ㅠㅠ


너무 힘차게 기어오다가 멈추지 못하고 머리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기 키우는 집에서는 한 두번쯤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떨어지는 순간 그냥 머리가 백지장 처럼 하얘지더라고요. 심장 벌렁거려서 남편한테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아기를 봐주러 어머님이 오시기로 했어서, 우선 어머님한테 맡기고 나갔는데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고 아기를 대리고 응급실을 갔는데, 다행히 타박상만 입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침대에 혼자 절대 안 올려 놓았는데도, 여전히 위험한 상황들은 몇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아기에게 위험하다고 얘기 해주려고


아가, 위험해. 그 때 머리 꿍! 했었지?


그러면 신기하게도 알아듣는 듯 제 눈을 유심히 바라봤습니다. 


아기가 움직이면서 돌이 되기 전까지는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다니지 않을때는 아기 침대에 넣어 놓기나 했지요. 기어다니면서는 누군가는 아기를 계속 보고 있어야해서 집안일도 거의 못했습니다. ㅜ.ㅜ


주말에 남편이 있을 때 둘 중 한명이 애를 보고 번갈아 가며 집안일을 했는데요,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아가, 곰!! 곰!!! 

머리, 곰!!!

아가씨~~ 져심! 저언-심~~

 

왠 곰이랑 점심을 그렇게 찾나,,, 


궁금했는데ㅡ 

아기가 일어나는데 머리를 찍을까봐 머리 쿵! 조심조심을 말한 거였어요.


아기가 조금 크자 완전히 혼자 걸어다니면서 여유가 좀 생기더라고요. 주말 오전에 남편은 늦잠 좀 자게 내버려 두고 한국에 있는 언니랑 전화를 했죠. 전화를 마치고 나니 남편이 개 두마리와 함께 침실에서 나옵니다.


잘 잤어?

어, 전화하드만

아~ 이번주에 너무 바빠서 간만에 언니랑 영상 통화했어

응, 잘했네

언니가 우리 딸보고 인형이다, 인형 그러는거야. 

딸랑구ㅡ 이모랑 영상통화하면서, 이모가 인형이다ㅡ 했지

응? 이녕, 이녕, 이년 ???

ㅋㅋㅋ 아, 뭐야 남편. 인! 형! 하고 발음을 똑바로해야지 

왜? 이년 아니야? 내 귀에는 "이모가 영상통화 하면서 이녕 이년, 이년같다" 그랬다로 들려 


한번은 아기에게 신체 부분을 한국어로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 

아기가 저녁을 먹고 난 후 목욕을 하는데 배가 불룩 나와 배꼽까지 툭 튀어나왔습니다. 



아가~ 여기는 머리. 이건 머리카락


그럼 머리에 있으면 머리카락, 배에 나면 배카락이야?


아니 -_- ;;; 


아기가 밥을 많이 먹으면 배꼽이 볼록하게 참외배꼽처럼 튀어나옵니다. 

영상통화를 할 때 튀어 나온 배꼽 보시고 친정에서 걱정을 하셨습니다.



으매, 아기가 참외배꼽 아니냐

탯줄 자를 때 잘못 잘랐나보네

아니에요, 저도 혹시.. 했는데 밥을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면, 배꼽 튀어나와요


라고 거듭 말씀드렸지만 걱정을 계속 하시다가 이번에 한국가서 아침에 일어나 배가 꺼진 상태에서 아기 배꼽을 보여드리자 참외 배꼽 얘기는 쏙 들어갔습니다.  


신기허다잉~ 배꼽이 쏙 들어가삣네


이후로 한국에 있는 동안 친정부모님은 아기가 잘 먹었는지를 배꼽의 튀어나온 전도를 보고 확인하셨답니다.  


체코어로 배꼽이 PUPÍK 뿌삑-인데요. 저는 배꼽이라는 체코어를 외울 때, 아기때 탯줄을 통해서 변이 오간 것을 떠올리며 poop bag이라고 외웠답니다. 


체코남편은 한국어 배꼽을 backup에 가깝게 발음을 하더라고요. 

하루는 목욕하기 전에 볼록 튀어나온 아기의 배꼽을 보더니 


거기 배꼽에는 backup plan 있어? 


합니다. 이리이리 말장난을 좋아하는 체코남편입니다. 한국 아재개그랑 비슷한거 같기도 하고^^


하루종일 잘 지내다가도, 졸릴 때 아기는 울거나 짜증을 내는 편입니다. 그러면 아기도 달래야하고 물이며 젖병이며 동시에 챙겨야하는 상황이 생기는데요, 이럴때는 남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남편, 물병 좀 가져다 줘

뭐? 어떤 병? 젖병? 아니면 다른 병?

보라색 물 담는 거 있잖아!!


사진 출처 https://www.nuby.com


아기가 보채는 급한 상황인데, 눈치껏 물병을 가져오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 화가 끓어 오르기도 합니다.  


한참 수유와 이유식을 시작하는 단계일 때는 우웃병, (외출시 쓰는) 빨대물통, (아기가 꼭지를 깨물어서 집에서 쓰는) 스파우트 물통 이렇게 썼습니다. 


제가 뭘 가져다 달라고 할 때마다 남편은 헷갈렸나봐요. 저희 남편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대부분 남편들은 원래 물건 찾기 능력이 부족한 건가요.... 


그 이후로 정확하게 우웃병은 Milk bottle, 빨대가 있는 물통은 Cup with straw, 그리고 뚜껑이 약해 집에서 쓰는 물통은 "양반컵" 이라고 불렀답니다. 


남편, 물컵 좀 줘

어? 이거? 양반컵?

응, 그 컵. 근데 왜 이게 양반컵이야?

빠는 부분을 보면, 양반들 상투 모양이랑 비슷하게 생겼거든

아~~그런거 같네


남편의 물건에 대한 상상력에 감탄하며, 그 이후로 저희 집에서 스파우트 컵은 양반컵으로 쭉~~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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