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년 10월에 있었던 이야기 포스팅입니다. 

저와 남편이 데이트를 시작한 때가 할로윈 파티여서, 10월 말일이면 보통 저희 부부는 기념일 맞이 식사를 합니다. 

이벤트나 선물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편이라서, 처음에 남편이 우리 데이트 기념일을 특별하게 보내자고 할 때는 조금 낯 간지러웠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도너츠맛집으로 도너터를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요.

아기가 어려서 저녁외식은 어려운 상황이라, 2016년 데이트 기념일 식사로 도너츠를 왕창시켜 먹었더랬죠. 


도너츠를 냠냠 먹으며 남편이 말을 건냅니다. 

부인, 내가.... 사실은..... 데이트 기념일에 맞춰서 선물을 샀는데,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해외배송을 시켰는데, 아직도 안 도착했어

남편 뭐야~~~ 난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아냐아냐, 괜찮아

그래도 미안하잖아

아니야, 부인은 아기 돌보느라 정신없으니까. 큰~~ 건 아니고 그냥 작은거야 작은거

물건 배달은 남편이 기대했던 것보다 2주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부인!! 드디어 오늘 소포 배달 올 것 같아

아, 그래?

근데, 하나 약속해줄 것이 있어 

뭔데?

상자 배달 오면, 꼭 받기만 해야돼. 내가 집에 도착 하기 전에는 열어보면 안돼. 절~~~~~대 안돼

아이고~~ 알겠어요

흐릿한 날씨 탓에 아기와 긴 낮잠에 들었다가 4시 정도 일어나서, 정신이 잘 안차려지는데 갑자기 벨이 크게 울립니다. 

띠리리리리~~~ 

누구세요

UPS 입니다. 


남편한테 소포 도착했다고 인증샷을 보냈습니다. 

남편, 선물 도착했어

잘됐네, 절~~~~~~대 먼저 열어보기 없이

아, 알겠어! 진짜로 안 볼게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남편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6시정도 남편이 퇴근하고 왔습니다. 

남편 왔다!!!!  나 소포 안 열어봤어

잘했어~

상자가 상당히 무겁던데~ 

진짜 별거 아니야

그럼, 이제 열어봐도 돼?

응, 그래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여는데 이~~~야 !!!!!!! 심슨 DVD 가 들어 있습니다.

요새 부인이 육아도 힘들고, 나 회사 옮기고 나서 뒷바라지도 힘들고. 최근에 멍멍이까지 감기 걸려서 고생했잖아

전에 우리가 꿈 얘기를 하다가, 당신이 살면서 심슨 DVD를 다 모으는 것이 꿈이라고 해서. 내가 당신의 모든 꿈을 이루어 줄 수는 없지만, 이 꿈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줄 수 있어서 샀어.

으허어엉 ㅠㅠ 남편..... (하트 뿅뿅)

저는 정말 스쳐 지나가듯 한 말이었는데, 그것을 남편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흘려한 말을 기억해주고, 그것에 신경을 써주다니....

심슨이라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으면서도 정성스런 이벤트에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경험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심슨은 제가 호주 어학연수를 가서 열심히 본 프로그램인데요,
이유는 호주에 갔다고해서 바로 귀가 트이고, 영어가 솰라솰라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영어 수업을 듣고 와서 숙제를 하고 오후에 남는 시간은 TV를 보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죠. 그러던 어느날 익숙한 심슨가족이 방영되는 것입니다.

잘 못 알아듣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우선 완전 낯설지 않았고 회차마다 다른 내용이라 그냥 저냥 볼만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심슨이 TV에서 하는 날이면 TV 앞에 앉았습니다. 하~~도 보다보니 같은 에피소드를 몇번씩 반복해 보다가 몇마디씩 알아듣게 되고,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더 재밌어져서 영어 공부를 심슨으로 하게 되었답니다.

만화를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서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심슨은 미국 사회, 문화 풍자가 많이 녹아있는 성인대상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슨만의 특유의 유머 코드가 있어서 아직까지도 에피소드를 보는데, 심슨 시리즈가 20년이 넘다보니 성우나 스태프가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ㅠㅠ 

조금은 슬프지만 심슨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기분이에요.


심슨 DVD를 선물받은 기쁨도 잠시 

남편, 근데 나 시즌 1-6은 있는데

참나~ 남편을 뭘로 보고, 이미 다 확인하고 7부터 샀지

오올~~~~~ 엄지척! 근데 있잖아... 내 새로운 노트북에는 CD 플레이어가 없어 ㅋㅋㅋ

아, 그럼 다음 선물은 CD 플레이어? 

키키키키. 그래 그래 


우리 저녁 뭐 먹을까?

반찬 있으니까 밥 할게. 남은 밥은 내가 먹을테니 부인은 따뜻한 밥 먹어

아휴,, 요요 체코 남편,, 아예 오늘 감동의 쓰나미를 일으키기로 작정한 모양입니다. 


다음 날 남편이 출근을 해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부인, 심슨 DVD 다 뜯어 봤어?

아니아니. 너무 귀하고 아까워서 손도 못 대겠어. 패키지 자체로 어제 기분을 되살리며 감상 중이야

그래도 열어봐야지. 

응, 차근차근 아끼고 아껴서 열어볼게


남편도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랴, 날로 달라지는 아빠 역할을 해내느라, 집에서 육아하며 투정부리는 아내 달래는 따뜻한 남편의 모습까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와중에 부인의 꿈을 챙겨줄 정도로 섬세한 남편인데, 체코에서 하는 육아가 힘들다고 투정부리며 제 입장을 더 이해해달라고 하지는 않았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날입니다.


+ 저희 동생은 심슨 가족에서 아빠인 호머랑 저희 남편이랑 닮았다는데요, 

제가 심슨을 많이 좋아하다보니 호머같은 외모에 익숙해져서 호머같은 남자한테 무의식적인 이끌림을 받은건지, 아니면 원래 남편을 만날 운명이라 심슨가족을 좋아하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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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라하밀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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