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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한국어는 아름답다 - 프라하의 가을 날 청승

여러분은 가을을 어떻게 느끼시나요? 

저는 아스팔트 아지랑이 피던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때ㅡ

아~하~가을이구나... 느끼는거 같아요. 


가을이 오고 나니 한 해가 벌써 지나가고. 
한 살 더 먹는거 같아 조금이나마 시간을 거스르고 싶어 앞머리를 냈어요. 

남편은 백팩 가방 메고 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저를 보며 

ㅋㅋ 이제 진짜 학생 같아 ㅋㅋ


남편이랑 같이 출근하는데 오늘따라 남편이랑 헤어지기가 싫습니다. 


트램정류장에서 트램을 같이 기다리는데 남편 회사로 가는 트램이 먼저왔어요. 

남편을 꼭 끌어 안고 


가지마. 남편. 


여보~ 나 회사 가야지.


아냐. 가지마. 다음 거 타. 


아~ 뭐야. 이거 타야지 지각 안 한다 말이야. 


몰라. 가지마~~그냥 가지마 ~~~!!! 


이러고 있다가 거의 문 닫히기 전에 놔줬어요. 


저는 트램정류장에 혼자 남자 괜시리 기분이 쓸쓸해져서, 

옆으로 휙 돌아서서 남편이랑 눈도 안 마주 치고 입을 삐죽삐죽거렸어요. 

분명히 남편이 쳐다보고 있을 걸 알았기 때문에 ㅎ  


출근하고 나서 남편이 


다른 남자한테 그렇게 귀엽게 입 삐죽거릴래 ? 응?


엥? 무슨 소리야~~ 남편한테 그런거야. 


거짓말 ! 내 옆에 서있던 남자한테 그런거잖아?


무슨 옆에 있던 남자??? 


내 옆에 서있던 남자~ 

그 남자가 완전 귀엽다고 부인 쳐다보는 거 봤단 말이야. 강아지 쳐다보는 것처럼. 


참나~ 난 그 남자 본적도 없거든 ! 


아무튼 나는 봤어. 다른 남자한테 귀여운척 하는거. 



이렇게 말도 안되는 남편의 질투를 받아주며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쌀쌀한 가을 날씨를 앞당기는 비. 

퇴근할 무렵에도 제법 굵은 빗줄기가 계속 떨어집니다. 

아침에 햇빛 쨍~나길래 우산 챙길 생각 안했는데ㅡ 오늘따라 비에 젖기 싫더라고요. 
정말 프라하의 날씨는 예측하기 힘든 것 같아요.  

다행인 점은 보통 비가 오랜 시간 내리지는 않으니까. 빗줄기가 약해질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다른 직원들도 일찍 퇴근해서 조용하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더라고요. 


오늘 계획은 일찍 퇴근하고 운동 가려고 운동화랑 세면도구 몽땅 챙겨왔는데ㅡ

사람들 사이에서 복작거리며 땀뺄 생각하니 어질거려서 그냥 홀로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사무실에서 한국 발라드 음악을 스피커로 듣고 있었어요. 

김동률. 박효신. 성시경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빗줄기처럼 제 마음도 젖어드네요. 


체코에서 생활하다보니, 별도로 한국분들을 만나지 않으면 하루에 한국어로 편하게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언제부터인가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몰려오더라고요. 


책도 한국어로 읽어야 내용도 촥촥 감기고, 노래도 가사 하나하나 담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노래가 좋고요. 


프라하에서 살면서 생긴 버릇 중에 하나라면, 한국 노래를 틀어 놓고 따라부르기입니다. 

주말에 그냥 눈뜨자마자 하는 경우도 있고, 평일에 퇴근하고 실컷 노래를 따라부르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더라고요.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느낀 건데요, 한국어 소리가 아름답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어 소리 관련해서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는데요. 

사무실에서 처음 한국어로 전화했을 때, 전화를 끊고 나서 체코 직원이 


우와~~ 한국어 소리가 참 귀엽네요. 

그러더라고요. 

한국사람들에게는 모국어이기때문에 소리로 인식하지 않지만 ㅡ

외국 사람이 들을 때는 소리로 듣기 때문에 귀여운 소리로 들리나보다.. 했거든요.  

 

타국 살이가 길어지면서, 노래들을 따라하다보면 - 한국어 소리가 참 예쁘다는 걸 느꼈어요. 

참 이상한게 댄스음악으로 시작을 해도 마지막에 듣게 되는 건 발라드더라고요. 

 발라드 노래를 따라부르다 보면 저도 모르게 괜시리 서러워지며 눈물이 주르르륵 흐르기도 하고요.   



가을이 오고 사무실에 혼자 조용히 있다보니, 괜히 센티멘탈해진건지.... 눈물이 삐죽~ 나더라고요. 

최대한 가을 감정 잡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옵니다. 


여보 어디야? 


아직 사무실.


아직도 일하고 있어?


아니. 음악 좀 듣고 있어. 

 
아~~~~빨리와. 저녁 하고 이썽~~ 


그래ㅡ지금 갈게 


보고시펑~~~ 나는 집에 혼자이썽. 아~~ 무서워. 여보 빨리와잉.

 
그래그래. 




저와 함께 사는 날이 많아질수록 남편이 콧소리 섞인 귀여운 한국어 실력도 깊어집니다.

다행히 비는 멈췄고 하늘은 벌써 어두워 졌더라고요. 


물기 가득한 밤거리가 조명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나네요. 프라하는 참 아름다운 도시라는 걸 느끼는 밤입니다. 



+ 비가 왔다가도 금방 멈추는 날씨라서, 프라하에서는 종종 무지개를 볼 수 있습니다. 

큰 무지개가 프라하를 감싸고 있죠? 

이렇게 무지개를 볼 때면 '프라하는 정말 축복받은 도시인가보다..'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트라호프수도원 무지개



+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자기 자랑할 것 있다면서 


자기가 유투브에 비디오 편집한 것 올렸는데 ㅡ 좋아요가 1시간에 40개가 넘었다며 ~~~ 


부인의 블로그만큼은 아니지만~ 당신의 유명세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러네요. ㅎㅎ 


이 자리를 빌어서 부족한 제 블로그에 와서 도움받았다고 댓글도 남겨주시고, View추천도 해주시고,

행복하라고 응원글도 남겨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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