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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내 생일, 난 덜 아픈손가락인가보다

​생일은 365일 중에 하루인 생일은, 저에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남편과 데이트를 하게 되면서 생일의 의미가 점점 커진 것 같아요.

체코 문화 중에 하나가 가족구성원의 생일을 중요시하고 가족끼리 생일날 식사를 하는데요, 가족사이가 끈끈한 경우에는 할머니 생신에 삼촌,이모, 조카 다 모여서 생일파티도 합니다.  

저희 시댁에서 생일을 보내는 분위기는 일가 친척이 모일정도는 아니지만, 생일은 중요한 날이고 생일 즈음해서 가족 식사는 꼭 합니다. 

▼ 체코 남편이 만들어 준 미역국과 김치 아침 생일상



남편은 생일 전날 퇴근 길에 남편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왔습니다. 

부인~~ 생일 미리 축하해!
고마워 남편
케이크 봐 볼래? 
그래그래. 우와! 아이스크림 케이크네
부인이 아이스크림 좋아하잖아~ 
히히. 그렇지
부인 좋아하는 마카롱도 있어~~ 내가 이거 구하느라 얼마나 돌아다녔는데,, 특히 하트모양 케이크 찾느라고~
감동이야 고마워
게다가 이거 마지막 하나 남은거라 40% 할인도 받았다! 

케이크 할인 가격을 자랑하는 남편 모습을 보니, 아저씨 다 되었다 싶습니다. 


한국에서 케이크를 사면 초를 서비스로 챙겨주지만, 체코에서는 초를 별도로 사야합니다. 

한국에 생일 초는 보통 긴 초는 10살, 짧은 초는 1살 이렇게 해서 꽂잖아요. 체코에는 긴 초와 짧은 초의 구분이 없기도 하고, 제가 30살 이후로는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30대를 나타내는 초 3개만 꽂았습니다. 

남편과 딸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케이크를 썰어보니 블루베리와 크림이 층층히 포개져 있습니다. 마카롱을 좋아하니 몇 개 없는 마카롱은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제 생일이까요~~ 


저희 친정집은 모든 가족의 생일을 음력으로 쇠는데요, 한국 달력이야 음력이 써져있어 알아보는데 편리하지만 체코 달력에는 음력이 없어 컴퓨터 음력 달력의 힘을 빌어야합니다. 그래서 가끔 저도 제 생일을 제대로 모를 때도 있습니다. 해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2월 중순~ 3월 초쯤이라, 2월이되면 체코 가족들은 제 생일이 언제인지 물어봅니다. 

음력으로 쇠다보니 한국 가족들도 자주 제 생일을 잊어버리곤합니다. ​작년 제 생일에는 생일 2주전에 아빠한테 문자가 와서 

딸~ 2주 있으면 생일이지? 신랑이랑 즐겁게 행복하게 보내라

그리고 정작 생일 날에는 연락이 없으셨고, 한 달이 지난 뒤에 

생일 잘 보내고, 즐거운 시간 보내

다시 이렇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빠도 참.....

친정식구들이 제 생일을 대충 챙긴 건 올 해가 처음은 아닙니다. 

20대 초반이 되었을 때부터, 

이사하느라 바빠서... 동생이 새학기 시작 하느라고... 언니가 취업 하느라고... 

등등의 이유로 재생일을 그냥 넘어간 적이 많았고, 이후로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는 남자친구가 챙겨주겠지~~ 하고 저희 부모님들은 유야무야 넘어갑니다.

그렇다면 이제 저도 부모님 생신은 그냥 넘어가도 되는거 아닌가요? ^^ 그런데 저 번에 한 번 체코에 와서 시차계산 못하고 하루 늦게 전화 드렸더니

이제 체코 갔다고~~ 출가외인이라고,, 부모님 생신 등 잊어버리냐

며 서운한 소리 한바가지 들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지인들을 모시고 딸의 200일 겸해서 (한국에서 돌 잔치를 할 수 없으니) 식사를 하려했는데 동생때문에 취소가 됐습니다. 

그리고 원래 2017년 4월에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맞아 처음 체코 여행을 오시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2월 초에 출산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이유로ㅡ 여행을 2017년 12월로 미루셨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그러십니다.

아휴~~ 애 보느라 힘들어서 체코는 갈수 있을지 모르겠다

체코 한국이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딸이 시집가서 살고 있는 나라인데…. 아무리 그래도 못 간다고 말하시나ㅡ 솔직히 서운합니다. 에휴.

​서운한 마음 뒤로 하고,,, 제 생일이니 맛있는거 먹고 싶어 밖에 나왔는데, 바람이 쌩쌩 부는 것이 날씨가 요상해 멀리 나가기 싫습니다. 

집 가까운 쇼핑몰에 나왔는데 푸드코트에 먹을만한 것이 딱히 없습니다. 한국의 푸드코트처럼 중식,일식, 한식, 이탈리아식 이렇게 다양하면 좋을텐데.. 체코 푸드코트는 대부분 KFC, 버거킹, 이탈리아식, 중식(거의 볶음요리)가 많습니다. 


기름진 것은 먹고 싶지 않고… 그래서 과일주스와 샐러드를 파는 UGO 에 가서 식사메뉴를 시켰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건데 생각보다는 그럭저럭 괜찮네요.


UGO 식사메뉴

그리고 나서 오랜만에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자유부인이 되었으니, 쇼핑이나 해볼까 했는데 딱히 살게 없습니다. 


요즘은 쇼핑을 위해서 상점을 여러군데 돌아다니는 것도,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것도 귀찮아졌습니다. 그나마 그게 유행 타지 않고 너무 화려하지 않은 옷을 살 수 있는 ZARA자라를 갔습니다. 제가 한국사람이다보니 그나마 스페인 브랜드 자라가 제 신체사이즈에 잘 맞더라고요. 


이리저리 자라매장을 걷다가 거울에 비친 낡은 겨울 부츠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미 3월초라 겨울상품을 팔고 있지는 않지만, 겨우내 부지런히 신고 다녀서 밑창이 닳은 부츠와 이제는 안녕해야겠다 싶습니다. 금방 더러워지긴하겠지만 봄맞이 흰 운동화가 눈에 띄입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에이 그래도 오늘 내 생일인데 나한테 선물을 주자 라는 생각으로 샀습니다.




운동화를 하나 사고 나니 이미 쇼핑 하는 것은 지치고 집으로 들어 가자니 너무 혼자만의 시간이 아까워 잠깐 쇼핑센터 의자에 앉아서 멍~때리고 있는데, 아빠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문자는 보내시네' 라고 생각하며 내용을 확인 하는데

딸~~당숙 아들이 결혼식 했는데, 이탈리아 가서 체코로 신혼여행을 간단다. 연락처를 주었으니 카톡을 잘 확인해 보거라


짜증이 확! 났습니다. 자식의 생일날 연락한 번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요. 아빠에게는 자식의 생일보다 만난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얼굴도 잘 모르는... 그 당숙 아들의 신혼여행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딸이 체코에서 사니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겠죠. 평소에 이런 문자가 왔다면 그려려니 했겠지만, 생일도 모르시면서 이런 문자를 보내는 아빠가 야속합니다. 차갑게 답문을 보냈습니다. 

이런 거 미리 연락을 주시던지, 다음 주에는 신랑이 출장가서 애기 데리고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문자를 보내고 나서 제 기분도 별로네요. 


저녁 먹을 시간이 되서  뚜벅뚜벅 걸어 집에 들어갔더니 남편이 저녁상을 차려놨습니다. 

뭐 이렇게 많이 차렸어~~

부인 생일인데... 아침에 대충 먹은 것 같아서 

정말 고마워 남편. 우리 남편이 최고네

제 생일이 한 달이 지나고ㅡ 4월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전화를 드렸죠. 


딸~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냐?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잖아요

그러게. 벌써 40년이다

네, 축하드려요 

그래도 어찌 딱 맞춰서 전화했네?

아니까 전화드렸죠

혹시 잊어버렸나~ 했지

딸은 잘 기억하니까, 제 생일 좀 잘 기억해 주세요. 한 달이 지나도 얘기도 없으시고

톡! 쏘아 붙이듯 말해놓고도 할지말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옵니다. 가족은 미운 정 고운 정 들어야 가족이 되는 걸까요.


+  이 포스팅을 예전에 써 놓고서 올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가족 얘기라서 조심스러운 면도 있어서요. 저희 부모님은 제 블로그 글을 읽지는 않으시지만, 그냥 서운한 마음 제 공간에라도 털어 놓고 싶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이 글을 어버이날에 올리게 되었네요. 부모님한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저도 부모님 마음에 꼭 드는 딸이 아닐수도 있으니까요. 어버이날이니 부모님께 전화드려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