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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체코남편을 질투의 화신으로 만든 문자 한통

저희 회사의 다양한 혜택 중 하나는, 정기적으로는 아니지만 전직원과의 미팅을 하면서 점심시간에 피자를 시켜서 먹습니다.

저희 집 옆 건물에 맛있는 피자집이 있어서, 그곳에서 주로 피자를 시켰습니다. 다행히 직원들한테도 반응이 좋았답니다.

며칠전에도 전직원 미팅이 있어서 피자를 시켰습니다.

배달을 오게 되면 카드 결제가 안된다고 해서, 미팅 전날 퇴근길에 미리 계산을 하고 다음날 점심때까지 배달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12시 30분경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피자 배달이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희 회사가 새로운 빌딩에 있어서, 아직 네비게이션으로 주소 찾기가 어려운가보더라고요. 어디에 주차를 해야하는지 난감하기도 하고요. 

피자 배달인데요. 빌딩 근처에 왔는데, 여기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호텔도 보이고...근데 어디에 주차 해야될까요?

그 분의 말을 알아는듣겠는데, 길을 설명하기에는 제 체코어가 부족합니다. 

얼른 새로 들어온 체코직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지난번에 이 직원에 대해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회사생활에 관한 제 포스팅에 자주 등장할 것 같아요 ^.^

빌딩 정문으로 나오라고 하네요. 빨간 차라고 하셨는데...

조금 멀리 주차되어 있는 빨간 차량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무래도 저거 같아요

체코직원이 통통통 뛰어가더니, 맞다고 손짓을 합니다. 

피자가 12판이라 직원 4명이 나눠 들고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이번에도 다행히 직원들이 잘 먹어서 피자 파티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피자파티를 잘 마치고, 다음날 보고서 마감이 있어서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문자가 하나 와서 흘끗 보니, 커피가 어쩌고 저쩌고 라고 적혀있습니다.

아휴... 생각해보니 커피렌탈 업체측에 인보이스 보내달라고 안 했더라고요. 
잊어버리기전에 커피 업체 측에 인보이스 요청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하루가 더 지나고, 살짝 여유가 생겨서 문자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Dobrý den, napište mi, zda byla objednávka v pořàdku..
Chtěl jsem se zeptat,jestli by ta malá moc milá slečna co mluvila česky,nešla někdy v týdnu posedět na čaj někam do centra - 
Kávu nepiji..děkuji Honza

안녕하세요, 주문하신것 잘 받으셨는지 답장 부탁드립니다.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그 체코어 하던 작고 사랑스러운 여성분이랑 이번 주에 센터쪽에서 만나서 차한잔 할수 있을까요. 
커피는 안 마십니다. 감사합니다. 혼자 (체코남자 이름)

어랏... 이거 커피 주문 내용이 아닌거 같은데.....;;

확인차 체코 동료한테 보여줬습니다.

이거 무슨 말이에요?
어머~~ 이거 데이트 신청이잖아요
네??? 근데 커피렌탈 쪽에서 저를 본게 작년인데, 갑자기 왠 데이트 신청이죠?
아휴~이래서 체코남자들은 안된다니까요~~ 

이분은 스페인남자랑 결혼하셨어요 ^^ 

근데 답장해줘야하지 않을까요
저한테 보낸게 아니라, 잘못 온거 일수도 있으니까요
럴수도 있죠. 어쨌든 데이트 신청 문자는 확실하네요

기분이 오묘한 상태에서 남편한테 문자를 보여줬습니다.

남편~ 나 이런 문자 받았어
쯔쯔쯧. 또 어떤 남자를 홀리고 다닌거야!!!
그게 아니라, 커피 렌탈 업체 같은데 우리가 커피 주문을 하도 안하니까, 주문상태는 괜찮은지 확인하고, 자기들한테 커피 주문해달라고 문자인줄 알았지
흠.....

남편은 갑자기 셜록홈즈 모드로 돌변했습니다.

문자 처음에 주문 잘 받았냐... 고 했단 말이지

커피렌탈 업체에서 메세지가 온 것 같다고?


근데 커피업체 사장님이 커피를 안마실까?

뭐... 안 마실수도 있지


아냐아냐. 확률이 낮어. 최근에 뭔가 주문한적 있었어? 

rohlik.cz (식료품 배달 온라인서비스)에서 우유랑 주문했었는데
그 남자랑은 무슨 얘기했어?
글쎄.... 무슨말 했는지 모르겠는데. 얼굴도 잘  안나


그렇군. 
메세지 온 전화번호 가지고 있지?
응응

남편은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쳐보기 시작합니다. 

다다닥 다다다닥~~ 10, 9, 8, 7,,,,, 1, 0 , 땡!

하아! 찾았다!!!!!
진짜? 누구야??
피! 자! 
엥???

엊그제 피자배달부와 전화 통화 내역을 찾아보니, 문자와 같은 전화번호 입니다.

맞네, 같은 번호네데 피자 픽업하러 나갔던 여자는 나랑 체코 직원인데.... 둘다 작으니 Malá (작은) 인가...
당신은 체코어로 얘기 했어? 
아니~ 난 얘기도 안했는데... 아아~~잠깐만..... 사무실 찾아오는 길 설명할 때 체코어 조금하기는 했네


체코 동료랑 둘이 같이 피자집에 가서 한번 물어봐. 둘중에 누구한테 문자 보낸거냐고
ㅋㅋㅋ 
아휴~~ 됐어. 뭘 그리 알아보려고 해

아니, 근데 첫 데이트 신청하면서 꼭 센터로 가서 차를 마셔야하고, 자기는 커피를 안마시니까ㅡ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서 성공하려나 ? 
모르지 뭐

다음날 출근하는데 남편이 갑자기 문을 막아섭니다.

오늘 피자집 근처 골목으로 가지마
아니~ 거기를 안지나가면 버스를 탈수가 없어


그럼 앞으로 절~~~~대 버스 타지말어

무슨 소리야?
아~ 어차피 피자 배달부는 차가 있으니까 차로 모시러 다니면 되겠네
ㅋㅋㅋ 뭐야, 질투하는거야


이 동네 살면서 편하게 즐길수 있는 고퀄리티 피자였는데ㅠㅡㅠ 이제 피자집 지나갈때마다 언놈이 울 마누라한테 문자 보낸거야? 이 생각 계속 날거아냐


아니지~ 그게 나한테 보낸건지 체코동료한테 보낸건지 확인 안된건데
아무튼! 피자집 골목 근처에 얼씬도 하지마
거기를 지나야 회사를 가는데 어떻게 안가 ㅋㅋㅋ
아, 몰라. 어쨌든 가지마. 앞으로 피자의 피자도 꺼내지 말고아흐... 내 사랑 피자~~~ 

뜬금없는 남편의 질투심에 웃긴 에피소드로 끝이 났습니다. 

10년전 남자친구였을 당시, 갑자기 엉덩이 맞은 기억까지 떠올랐네요.


하나의 해프닝으로 포스팅을 하는 이 시점에, 갑자기 문자를 보내고 답장이 없어서 혹시나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남자분에게 마음이 쓰여 문자를 보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기혼자입니다.

피자 배달원이 보낸 데이트 신청 문자가, 저한테 보낸거든~체코 동료한테 보낸거든, 둘 다 결혼해서 아기도 있으니까요. ^.^

문자를 보내자마자, 세상에나 ! 2초만에 칼 답장이 왔습니다. 

아뇨~ 사과하지 않으셔도 되요 ;) 

이렇게 피자 배달원의 데이트 신청 문자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문자 상대가 저였는지 동료였는지도 모르면서, 앞으로 혼자 피자 주문하러 가기 어색할거 같습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