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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체코남편이 구해준 크리스마스 날

체코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날입니다. 

보통 12월 24일 저녁이 중요한 날이라서, 저희 체코 가족도 모여서 저녁을 먹기로 합니다. 

2015년 크리스마스에는 아기가 태어난지 보름도 안되어서 제가 몸조리하기 바빠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장식을 하려고 했습니다. 

부인~ 크리스마스 나무 살까 말까? 

하.. 글쎄. 아기가 큰 나무 보면 좋아할 것 같기는 한데.. 좀 더 생각해 보자. 

그래그래.

며칠 뒤 남편이 

부인, 내가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이번에는 나무 사면 안될 것 같아. 

왜? 

혹시나 아기가 돌아다니다가 나무가 넘어지면 어떡해

아... 맞네. 그리고 다 끄집어 내리니까, 장식도 다 뜯어 버릴거야 

아기가 손에 닿는 높이에 있는 물건들을 바닥으로 내리기 때문에, 올해는 조촐한 장식을 하기로 합니다.  

예전에 썼던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창고에서 꺼내, 식탁과 유리창을 장식하니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납니다. 

당연히! 지난 크리스마스처럼 크리스마스 쿠키도 미리 주문해서 식탁에 놓았고요.   

체코 크리스마스

창문 밖에 아파트 뒤뜰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나무가 서 있습니다.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부엌 선반쪽에 2년째 잘 살아 있는 미니 크리스마스 나무 장식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언니가 직접 만들어서 딸랑구한테 선물해 준 미피 모형이 나무의 주인인냥 앞에 서있고요. 자세히 보시면 목에 빨간 방울을 달고 있습니다.  

천장 램프에 달아 놓은 천사 장식은 제가 프라하에서 첫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때, 올드타운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산 것이네요. 

한 해 한 해 프라하에서 크리스 마스를 보낼 때마다 추억하게 되는 장식이에요. 

제가 가진 애착만큼이나 아기도 장식이 좋은지, 울다가도

여기 봐라~~ 천사 천사! 천사들이 있네~ 

하면 눈물을 뚝 그칩니다. 생각보다 눈물 뚝! 효과가 커서 아직도 램프에 매달아 놨어요.

저는 아기를 보면서 크리스 마스 장식을 하고, 남편은 치킨 돈가스(řízek 리-젝)과 감자샐러드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감자 샐러드에 들어가는 재료가 좀 이상합니다. 

남편, 지금 파슬리 뿌리 썰어 넣은거야? 

어. 

진짜로? 향기 강한 파슬리 뿌리를 넣었다고?

어. 내가 찾아 본 요리법에는 넣는 걸로 나왔어. 

이상하다... 파슬리 뿌리 넣은 감자 샐러드 못 본 것 같은데...   

저번 크리스마스 때 만든 감자 샐러드에도 넣었어. 그때는 아무말도 안하더니

파슬리 뿌리가 워낙 독특한 냄새가 강해서 샐러드에 들어 갔다면 눈치를 못 챘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투덜거리면서 다시 감자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넣은 재료는  

헉 ! 

왜?

지금 뭐 넣은거야?

샐러리

샐러리??? 그 쓴 맛 나는 샐러리?? 

어, 이것도 요리법에 나와 있어. 

그래도 샐러리는 좀 아니잖아

(살짝 삐침) 아- 몰라! 다음부터는 안 만들래.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기다하는 맛이랑 너무 달라서. 

보통 감자 샐러드하면 감자랑 당근, 계란 이런거 들어가니까

또~ 또 다른 거 뭐 들어 가는데?

옥수수 콘이나 수리미 (Surimi -게맛살) 같은 거?

그건 한국식이잖아. 나는 체코 전통식 감자샐러드를 만들거야

전에 어머니 만드신 거에는 파슬리랑 샐러리 안들어 갔던 것 같은데

(좀 많이 삐침) 아, 됐어! 먹지마

아냐아냐. 먹을 건데... 아마 파슬리는 빼고 먹을거 같아

에잇! 

아참~ 우리 소세지 사 온 거 있지 않아? 그럼 소세지 넣어 줘

짜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감자샐러드 입니다. 

제가 가진 원칙 중에 하나라면, 탈 날 음식 아니면 음식 한 사람의 정성을 봐서, 맛타령 하지말자인데요- 

남편이 만들고 있는 감자 샐러드는, 제가 상상하는 맛을 뛰어 넘는 거라 잔소리를 좀 했습니다. 만든 성의를 봐서 맛은 봐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잘 먹었습니다. 

간혹 감자인줄 알고 콱! 씹었다가 파슬리여서 씁쓸한 배신감을 느끼긴 했지만요.     


다음 날 ​12월 25일도 연휴라 쉬고 있는데,  어제 먹은 기름진 음식탓인지 배탈이 났습니다. 

보통 집에서 음식을 해 먹으면 탈이 안나는데, 과식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단 것 까지 많이 먹어서 인지, ​이가 찌릿 !! 하고 시립니다.

제가 어릴 때 치아 관리를 잘못해서 이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편이거든요. 

많이 깎고 떼우고, 이후로 꾸준한 관리를 해서 평소는 괜찮다 가끔 시릴 때가 있습니다.


치실과 치간 칫솔을 이용해 잇몸을 싹싹 닦아야겠구나.


치아 사이사이와 입 안쪽 깊은 어금니 사이 사이를 닦다가

좀 힘을 줬더니 목이 좀 비틀어져서 다시 정돈해 아래쪽 깊은 어금니 쪽으로

치간칫솔을 쓱쓱 두번 넣고 세번째 넣는데.. 


타닥!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치간칫솔의 모가 부러졌습니다. 

보통은 손으로 잘 빠지는데... 이번에는 좀 단단히 박혔는지 잘 안나옵니다.


치실도 이용해 보고 다른 치간칫솔로 밀어서 빼보려고도 해보고, 

핀셋까지 동원했지만 소용없습니다.


갑자기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리를 휘리릭 스칩니다.


오늘이 25일인데 내일도 26일 크리스마스 휴일이고. 

일반 병원은 문을 닫았을테니 응급실을 가야될거고..


이 사이에 낀 치간칫솔때문에 응급실까지 가야한다니ㅡ

휴일이라 택시 잡기도 힘드니 구급차까지 불러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어허허허허허 ;;; 


얼른 남편을 불렀습니다. 


남편 나 뭉제가 쇙거써


뭐라고? 못 알아듣겠어


나 문줴 이써


왜?


나 여기 칫솔머리가 꼈어


아이고... 핀셋 어딨지?


남편은 제가 쓰던 핀셋으로 해보더니 잘 안되자


이거말고 작은 거 없나? 부인 입 좀 더 크게 벌려봐. 

머리 방향도 이렇게 해보고


어금니 안쪽이라 머리를 요리조리 조절해 빛에 잘 보이게 한 다음 

다행히 작은 핀셋으로 쑥! 뽑았습니다. 휴~~


부인님!! 메리크리스마스~~ 어휴...내가 맥주 먹었기에 망정이지...

독주나 마셔서 헤롱헤롱하면 어쩔뻔했어


뭐, 그럼 응급실 가는 거지


부인, 우리 치간 칫솔까지 아껴야할 정도로 월급이 적지는 않으니까~


아, 알겠어. 원래 잘 빠지는데 오늘 좀 이상했던 거야


근데 갑자기 드라마 MASH에 한 장면 생각났어. 

거기서 환자 한 명이 크리스마스에 사망할 위기에 있는데ㅡ 

아이들을 위해 며칠 생명을 연장해달라 하거든. 

매해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먼저 떠난 아빠생각에 아이들이 너무 슬플까봐.  


그러게. 나는 나중에 크리스마스날에는 안 죽었으면 좋겠다


치간칫솔모가 부러지며 겪은 해프닝을 통해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찬 크리스마스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행복한 날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