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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남편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요즘 프라하 날씨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영상5도 정도로 올라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오예 ~~~!!!! 

봄이 오는 것이 오후에 나른해짐으로 느껴집니다. 졸려



오늘 아침에는 눈이 잠깐 내렸더라고요. 

올 겨울 프라하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눈이 와도 많이 쌓이지 않고 금방 녹아버리기도 하고요. 


여느 주말처럼 제가 남편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거실로 나오더니 


와! 눈 왔어? 


응, 어제 밤에 춥더니 눈이 왔네. 


근데 지금은 안 와? 


응. 멈춘 거 같아. 


일요일 쉬는 날인데, 눈 오면 좋겠다. 와라~~~  와라 ~~~ 



이렇게 얘기 하고 커피를 2잔 타서 가져다 주는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우와! 남편이 눈 얘기하니까 눈이 온다 !!! 신기하네. 



그 눈도 결국 오래 가지는 못했어요. 지금은 햇살이 나왔다 구름이 덮었다 왔다갔다합니다.  

잠시라도 따스한 햇살 비치는 것 보니 어느덧 지리멸렬한 유럽의 겨울이 끝나가는 것 같아보여요.


올 해 겨울은 심한 슬럼프 없이 넘어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유럽의 겨울 날씨에 익숙해져가나봐요. 


눈이 오니까 괜히 지난 다이어리들을 꺼내 보고 싶더라고요. 

제 습관 중에 하나라면 갑자기 생각나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노트에 적어 놓는데요, 

그 중에 미처 남편한테 보내지 못한 오글거리는 편지 한 장이 있어서 

블로그에 남겨 놓으려고 글을 씁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닭살 팍팍 돋는 편지니까, 원치 않으시면 안 읽으셔도 될 것 같아요 ^.^

사랑이 유치한 면이 있잖아요. 저와 남편의 사랑도 유치 뽕짝입니다. 


남편과 처음 데이트를 하던 날 눈이 많이 왔거든요. 

햇살과 눈이 섞여 쏟아지는 것을 보니 한국 겨울이 생각나서 글을 써 봅니다. 

지금의 상황에 맞춰서 조금 각색했습니다. 


닭살 준비 안되신 분들은 스크롤 내리는 것 여기서 멈추시면 됩니다. 

계속 읽으실 불들은 닭살 즐감하세요 ! 



프라하 까를교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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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단 둘이 처음 밥을 먹기로 한 날,  함박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외국인이 혼자 버스 타고 초행길을 오는데 길바닥이 미끄러워 걱정을 했습니다.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됐을 즈음, 계속 눈이 내려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갔죠. 


당신이 탄 버스가 눈 앞에 지나갔고, 버스 뒷문에서 내릴 줄비를 하고 있던 당신과 눈이 딱! 마주쳤어요. 


버스정류장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다가 

길거리 주차장에서 나오는 봉고차를 먼저 보내려고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당신은 이미 버스에서 내려서 제가 서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고,  

봉고차 뒤로 방금까지도 봤던 제가 사라졌던 거죠. 


어디갔냐고요? 


당신을 보고 너무 신이 나서 봉고차가 가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이에, 

빙판길에 사이드로 꽈당! 하고 미끄러져 버렸습니다. 


생떽 쥐페리<어린왕자>의 여우의 말처럼 

당신과 밥을 먹기로 약속한 그때부터, 버스에서 내려 내게로 걸어오는 순간까지 

당신과의 만남기 그렇게도 신이 났었나 봅니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을 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처음에는 얼굴색도 말도, 서로 자라온 배경도 달라 

서로의 차이와 주변의 시선들로 힘들어한 적 있었지만 

어느덧 우리 함께 한 시간이 7년차가 되어갑니다. 


세상의 숫자와 편견들로 우리 사이의 흐린 날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서로의 곁을 지켜주며 행복한 날의 숫자를 세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무게에 허덕이면 서로의 품에서 한껏 울고

삶에 지쳐 쓰러지면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고 두 손 꼭잡고 함께 인생여행 했으면 합니다. 


저의 예민한 성격과 감정 기복으로 당신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루에도 몇 번씩 괴롭힐 때도, 바다같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가지 부족한 저를 당신 자신보다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며 

소중한 사람으로 대해줘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유통기한이 2년이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나는 당신을 보면 설레어 뛰어가다 눈밭에 미끄러져 버릴만큼이나 심장이 뜁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남편.  

지금처럼 당신의 곁에서 함께 나이들어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