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친정집에서는 생일을 음력으로 쇱니다. 

제 생일은 음력 2월 초라서 양력날짜로 보통 2월 말이거나 3월 초입니다.

학교 다닐때2월 말은 봄방학 중인 경우가 많았고요, 

3월 초는 새로운 반 친구들과 어색어색해서 

친구들과 생일 축하파티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희 친정 가족들은 그렇게 생일을 챙기는 분위기도 아니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 오다가 

남편을 만나면서 생일을 챙기게 되었습니다ㅡ


저는 생일이 3개인데요,


1. 주민등록번호에 있는 호적 생일

2. 태어난 해 음력 생일의 양력 날짜

3. 해마다 바뀌는 음력 생일의 양력 날짜


남편은 제 생일을 3개인 걸보고 고민에 빠졌어요. 이걸 다 챙길 수 있을지 ㅎㅎ

자기가 몸에 문신을 새겨야 한다면, 

제 생일 3개를 잊어버리지 않게 새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  


다행히 제가 생일을 크게 챙기는 스타일 아니라서 좀 잊어버려도 괜찮다 했더니

남편은 제가 세상에 태어난 날인데 반드시 축하를 해야한다고 해서 

3번으로 생일을 쇠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3번이라고 한 날짜만 기념해도

남편한테는 기억하기 어려운게 해마다 날짜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해가 바뀌면 남편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제 생일날짜를 확인하는 겁니다.


올해는 생일이 3월 초더라고요ㅡ 남편은 2월 말부터 뭐가 갖고 싶은지 묻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외출 빈도수가 줄어드니 옷도 화장품도 그다지 필요한 게 없습니다.

휴대폰도 태블릿도 있어서, 사실 뭐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더라고요.


한참을 생각해보니 제가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이10년정도 되었고, 

요즘 컴퓨터에 있는 기본적인 기능들이 없기도 해서 노트북을 사달라고 하기로 합니다.

키보드나 아래한글 같은 것 때문에 나중에 한국에 가서 사기로 했어요.


필요한 선물을 나중에 사기로하니 생일 기분이 더 안나더라고요.

괜시리 생일이라 드는 쓸쓸한 마음을 떨쳐버리려고 

집안일도 하고 TV도 보고나니 남편 퇴근시간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한 손에 있던 꽃을 건네 줍니다.

(꽃을 자주 사는 편이 아니라 아직 변변한 꽃병이 없어서, 맥주 잔에 꽂아놨습니다. )


하트모양 풀장식 꽃다발


생일 축하해, 부인 !!!!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꽃을 받고 나니 참고 있던 서러움이 터진 것인지... 

눈물이 글썽글썽 고였습니다.


안돼안돼. 부인 울지마~~

뭐야. 꽃을 사왔는데도 부인이 울잖아..

오늘따라 일이 많아서 늦게 끝나서 좋은 꽃도 케이크도 다 없더라고.

차라리 내일 살까하다가, 부인 생일은 오늘인데....

 꽃을 오늘 사지 않으면 의미도 없고 

생일인데 아무 선물도 없으면 부인이 울지 않을까.... 해서 꽃 사왔는데ㅡ

뭐야~~ 어차피 울거였네.


아냐아냐. 이건 기쁨과 행복의 눈물


그래도 싫어. 울지마.


꽃 가운데는 내 사랑이야~~ 

처음에는 무슨 하트 모양 나무를 끼워서 팔려고 하길래 됐다고 했는데 - 

이렇게 풀로 만들어줬어. 


체코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와서 낯선 생활에 적응하느라 무던히 남편 앞에서 울었던지, 

남편은 제가 눈물만 살짝 글썽여도 

자기때문에 제가 체코로 와서는 고생스러운 삶을 살게한 것 같은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큰일 난 것처럼 걱정합니다.


꽃은 받았고, 남편의 다른 손에 들려 있던 케이크를 보니 

마지팬(marcipan)이 둘러 싸인 케이크 입니다.


* 마지팬 이란?

으깬 아몬드나 아몬드 반죽, 설탕, 달걀 흰자로 만든 말랑말랑한 과자

(출처: 위키피디아)


마지팬(marcipan)케이크


체코에서 먹는 디저트에 마지팬이 많이 들어갑니다. 

저는 왠지 모르게 그 식감이 좋지 않아서 마지팬 들어 간 디저트는 안 먹게 되더라고요. 


근데 남편. 나 마지팬 안 좋아해.


아휴ㅠ.ㅠ 내일 다시 사올게


아냐아냐. 됐어.

작은 케이크니까 다행이야

있다가 케이크 안에 뭐들었는지 보자.


선물로 사온 케이크를 보고, 싫다고 바로 얘기를 하는 제 모습을 보니 

이제는 저희 부부, 더이상 신혼은 아닌가 봅니다 :) 



결혼하고 체코에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남편이 계속 생일마다 미역국을 끓여줬는데요.

처음 끓인 미역국은 왠지 밍숭맹숭했어요. 

그때는 신혼이었으니 정성의 맛으로 냠냠 먹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 출산 후 산후조리 동안 얼마나 많이 미역국을 끓였는지

이제는 미역국을 대충 손맛으로 끓여도 제법 깊은 맛이 날정도입니다.


이번 생일도 역시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과 밥을 먹었습니다. 

미역도 적당히 부드럽게 잘 끓여서 후루룩 후루룩 잘 넘어가더라고요.


요새 남편이랑 저는 드라마<시그널>에 푹 빠져서 밤이면 저녁을 먹으면서 열심히 보고 있는데요


드라마에 너무 빠져있었던 건지,,,,

아니면 미역이 너무 부드러웠던 건지,,,,,

아랫입술의 안쪽을 콱! 깨물었습니다.


으악 !


왜 그래 부인?


아대 이슈 깨무더떠.


뭐라고?


아래 입슐 깨무렀다고.


어떻게?


밥 먹다가.


평소보다 좀 세게 깨문거 같아서 휴지로 닦아보니 피가 납니다.


남편, 피이이이 ㅠ.ㅠ


으으웁웁웁 .큭.


지금 웃었어?


아니아니. 크큭.


웃고 있잖아~~ 재밌어??


부인은 하나도 안 재밌어?

좀 웃기잖아. 보통 밥먹다가 혀는 깨물어도 

어쩌다 입술 안쪽을 깨물었대...??? 푸하하하하하.


뭐야ㅡ 이게ㅠ.ㅠ 이상한 생일날이야.


왜~~ 생고기도 먹고 좋은 생일이네. ㅋㅋ



도대체 얼마나 단단히 깨물었던건지 입안에 피맛이 납니다. 

거울로 보니 구멍도 살짝 뚫렸고요. 아이고 ~~~~


저녁을 다 먹고 나니 남편이 묻습니다.


부인, 마지팬 안 좋아하니까 케이크 안 먹을거야?


아니~ 그래도 먹어야지. 케이크인데. 

비타민 물이랑 같이 마실래ㅡ

아! 그리고 남편 생일 축하 노래 불러줘~ :)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부인~~ 생일 축하 합니다 !!!

부인 16번째 생일 축하해


아, 뭐야 ㅋㅋㅋㅋ


아직은 콩깍지가 안 벗겨졌는지, 남편 눈에는 아직도 제가 16살 소녀처럼 보인대요.


그리고는 테이블 보를 최현석 쉐프가 앞치마를 펼치는 것처럼 쫙~~ 펼치는 퍼포먼스를 합니다.


아 남편 ㅋㅋㅋ 그게 뭐야.


부인이 집에 애기랑 혼자 있었으니까 뭔가 재미있는 거 필요하지~~

부인, 생일 맞은 기분이 어때?


음,,,,,, 잘 모르겠어.


체코에서 지난 시간들이 스치듯 지나가?


해가 지날수록 남편 앞에서 서럽게 우는 횟수는 줄어든 것 같아요. 

신체적인 변화라면 다치거나 아픈 데 회복이 점점 늦어지고, 

군살 생기는 것이 팍팍 느껴지고. 운동을 해도 살도 잘 안빠지고 운동 후에 근육통도 늦게 나아지고...

기분 좋은 날 사진을 찍어도 왠지 생기발랄하지 않고... 등등. 

 

올해는 아무래도 아이의 엄마로서 맞이 하는 생일이라서 그런건지, 

개인적으로 조금 무거운 느낌도 들었던 것 같네요. 엄마가 되는 책임감의 무게겠죠?  



한 때는 20대 초반이 영원할 것만 같았고, 30대가 되면 인생에서 큰 일 생기는 것처럼 걱정했던 것도 같고요.

매해 생일을 쇠게 되면, 몸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 자신만 보더라도, 꿈틀거리는 파티 본능은 20대 초반 나이에서 멈춘 것 같아요. 

하지만 20대 초반처럼 놀다가는 온몸이 쑤시겠죠 ㅎㅎㅎ 


생일을 맞이하여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이제는 아이가 있으니 앞으로 건강관리를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 다행히 케이크의 안쪽은 한국에서 먹던 생크림 케이크와 비슷한 맛이어서, 맛있게 다 먹었답니다. 

겉에 마지팬은 다 걷어 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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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라하밀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