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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체코생활

음악은 시간의 정지버튼

10월의 마지막이 다가오며 프라하의 공기는 옷깃을 여밀정도로 차가워졌다. 


새벽 2시.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때문일까,, 잠에서 벌떡 깨어 다시 잠들지 않는다. 

왜 이렇게 잠을 설치는 걸까.


왼쪽으로 누워보고, 오른쪽으로 누워보고... 머리를 비워보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낮에 회사에서 인터넷으로 접한 신해철 사망 소식. 

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본 비정상회담에 패널로 나온 그의 모습에 그냥 반가웠었다. 
얼굴이 많이 부어 보여서 아픈게 아닌가 걱정은 했지만.


그래도,,,, 난 신해철 팬도 아니었잖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새벽에 머리 속 가득 또렷해오는 신해철 사망 소식.

아무리 사람 살고 죽는 것이 하늘의 이치라고 하지만 참으로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응원가로 사랑받는 <무한궤도 - 그대에게>를 시작으로 

그의 노래를 한 곡씩 듣다보니 눈물은 더욱 멈출줄을 모른다.




분명 그의 팬은 아니었다면서, 그의 곡들은 아직까지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멜로디가 익숙하다.


신해철의 노래는,, 내가 직접 부르지는 않아도 
남자 아이들이 폼잡고 노래방에서 부르던 파릇파릇한 모습들이 기억에 있고

레코드에서 테이프로. 

좋아하는 테이프는 무한반복으로 늘어지게 듣던 아날로그 세대가 기억하고.. 

90년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했던 한국음악의 르네상스같은 시기에 그의 음악을 들었던

모든 이들이 기억하겠지. 

  
영어 가사가 흔치 않았던 시절
낯선 영어 가사를 따라 불러보겠다고, 중학생이던 언니를 졸라 한글로 발음을 적어달라고 했던 일들. 

아련한 꽃 한송이 같던 감수성 여린 십대를 지나

이제는 어른의 모습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내로 엄마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가슴 싸했던 마음도,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불안했던 마음들도
이제는 현실적인 고민이 가득채우고 있는 세상에 찌든 나이. 

몰랐었는데, 그와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었구나.... 




잊고 살았는데.... 

전국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던 날이면, 방 안에 갖혀 <날아라 병아리> 들으며 울었던 기억.

신해철의 노래가 내 인생의 방황하고 불안했던 시간을 채워주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인생의 시계 속에 앞만 보고 달려가며 기억 한편으로 밀려났던, 

사소하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이 거짓말처럼 줄줄이 되살아났다. 
예전 중고등학교 시절의 음악을 들으면, 그 시절의 내가 다시금 꿈틀거리며. 



세월이 흘러 CD에서 MP3로, 인터넷 Youtube 까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화를 겪으며 떠나간 신해철의 노래를 인터넷으로 듣고 있다.


그의 팬도 아니었던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아픈건. 

정치적 발언과 직설적인 어투로 사람들의 공격을 많이 받긴했지만 

변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의 마음은 강직해서였을까.

특별히 팬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그의 강직함에 내심 응원을 보내고 있었나 보다.

갑작스런 세상과의 이별 소식이, 마음에 큰 구멍을 뚫어 휑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사람들과 이별하며 살아가겠지. 
자주 보지는 못해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나씩 떠나보내며 -  

그의 소식이, 사람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아련한 마음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참..... 마왕은,, 죽으면서까지 사람들을 깨우치고 가는건가..



신해철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청춘과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와의 이별은, 열정가득했던 지나온 청춘과의 단절같이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만큼 그가 그리울 것 같다. 

신해철 님, 늦었지만 당신의 음악으로 삶에 고난에서 위안 받았음에 고마웠습니다. 

당신과 같은 나라 동시대에 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부디, 그 곳에서 평온하시길... 


신해철 영정사진. 너무 크게 올리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올립니다.



신해철 < 나에게 쓰는 편지>



Youtube 의 추모글입니다. (Irene Haan님, 문제가 될 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신해철 < 일상으로의 초대 >